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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색

어느 날, 그다음을

by 연안 어귀 2020. 10. 26.

계절이 허구로 돌아간 세상, 풍경은 변하지 않고

이상은 망상 중 하나가 되어 주검조차 흩어낸다.

 

이보다 최악인 것은 없었으니

내일은 다를 거라 믿어보며

저 먼발치에 시선을 밀었다.

 

여전히 추운 낮에 태양마저 죽었다.

 

검붉은 노을이 조각나는 때, 촛불로 길을 밝혔다.

창공조차 가린 막막함이 기어코 코 앞에 굴러왔다.

잠시 망설이다 녹아든 신발 한 짝을 멀리 던졌다.

 

몇 차례 굴러갔을까, 신을 수 없을 만큼 더러워졌다.

 

우두커니 선 채, 나는 나의 맨발을 바라보았다.

 

붉은 기포가 들끓어 피부로 스며들고

내가 밀어낸 이가 누운 곳의 옆에서

긴 여정을 끝마쳤으나, 성과가 없던

그런 길에서 메마른 끝을 기다렸다.

 

고작, 이렇게 매듭짓기 위해 살아왔던가.

 

달조차 뜨지 않은 한스러운 대지였지만

내가 기댄 곳은 유난히도 따사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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