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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우울

가장 낮은 곳, 그 위에서

by 연안 어귀 2020. 10. 26.

난, 아직은 머물러야 했다.

 

후에 맞이할 빛에 눈이 멀기 위해서는

당분간 이 어두운 공간에 남아야 했다.

 

나 자신이 슬프다는 것을 자각하면

그보다 애처로운 일은 없을 것이라

그리 다독이며 이곳에 정을 떨군다.

 

더 이상 내려다볼 곳이 없던가.

 

아니, 분명 최악은 아닐 것이라고

명확하지 못한, 흐릿한 것이 있다.

 

때가 되어 아래를 올려다보고 나서

저곳보다 나를 알던 순간이 없다고

그리 외면해보며 고향을 속여본다.

 

지나온 길이 너무도 부실했던 탓에

결국 돌아가지 못한다는 탓을 했다.

 

내가 자리한 곳은 언제나 낮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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