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가요
우습게도, 사실이라는 단어를 거짓을 고할 때 고르고는 했습니다. 그러니 애써 이해하지도,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저 당신은 자욱한 안개를 맞이하며 살짝, 입꼬리를 들었으면 합니다. 스스로를 알지 못한 채로, 잔잔한 수면을 마주해 벅차 흐느끼지 않도록 큰 보람도, 드높은 성취도, 자라난 기대 역시 조금은 덜어내도 좋습니다. 단지, 당신이 걷는 길이 누구와 같이 희미하지 않기를 소망하겠습니다. 모든 게 아득해질 언젠가, 뒤돌아보며 한 서린 탄식을 토해내지 않도록 아쉽게도, 거짓이라는 말조차 대부분 사실을 읊을 때 쓰고는 했습니다. 혹시 당신도 평온의 한적함과 차분한 고요, 헤아릴 수 없는 경이를 아실까요. 새벽에 흩날리는 밤조각을, 게으른 정오의 휘청임을, 밤중의 가라앉은 숨을 아마 당신도..
2021. 5. 11.
듯한
상상하고 있을까, 피로에 젖어든 모습을 괜히 또, 안타까운 듯한 마음이 있다. 되새기고 있을까, 남기고 간 이야기들을 스치는, 애처로운 듯한 마음이 있다. 청명한 새벽을 폐부 가득히 채워 넣으면 무심코 당신이 곁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 더 울적해져버린 듯한, 그런 마음이 있다. 잘하고 있는 걸까, 낡은 향이 배인 곳에서 금세 또, 기대고 싶은 듯한 마음이 든다. 잘되고 있는 걸까, 나아진다는 느낌이 없어 그리, 널 보고 싶은 마음이 밀려오는 듯했다. 계절이 교차하는 시절의 하루, 그 하나의 복판. 황혼이 몸을 뉘인 초록의 끝에서 숨을 내쉬면 수없이 고대하는 날이 조금은 다가올까 싶어 그리움이 되려 커진 듯한, 그런 마음이 든다. 굳어짐과 대비되어 요동치는 듯한, 혼란함과 엇갈려 가라앉은 듯한 굽은 등을 남..
2021. 5. 10.
주변을 보다 (2)
흙내음이 난다. 한기가 피부를 오르고, 불에 달군 돌이 점차 식어간다. 생전 처음 보는 문자가 모든 시선을 가져갔다. 머무르고, 주저 앉고, 흐르는 동시에 가로 막힌 기묘한 형태의 글자가 사방에 가득하다. 작은 등불을 곁에 두고, 손으로 짚어가며 글을 읽는 이는 내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존재였다. 단단한 흙벽에서 서늘함이 스며나오고, 그가 들고 있는 석판을 더 차갑게 만든다. “이 위치는...” 석판의 뒤에 숫자를 새기고, 어질러진 방을 가로질러 침상 위의 배낭에서 지도를 꺼낸다. 베두로페에서 펼쳤던 상세한 지도가 아닌, 조잡하고 낡았으나 다른 부분이 있었다. 죽음의 땅 사라노아를 지나, 신드라의 강줄기를 따라 해양으로 향한다. 현재의 지도에는 없는, 둥란이라는 섬이 그려져있다. “항해, 표류, 귀환인가..
2021. 3.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