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설/낙오자들2

엉겨붙은 허물
어느새 버릇이 되어버린 듯, 나는 이렇게 습관처럼 첫 날을 상상하고는 했다. 설명하기 힘든 허전함이 가시지 않아 그랬을지, 아니면 항상 가시를 세웠던 그녀가 못내 그리운 탓일지는 확실치 않았다. 아마, 그녀도 지금의 나처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끼고 있었을지 모른다. 단절된 공감을 시사하듯, 물병에 꽃아둔 푸른 꽃잎을 손끝으로 쓰다듬는다. "한 번 쯤 만나고 싶네." 내가 준비도 없이 떠나보낸, 두 번째 인연이었으니까. 언제나와 같은 오늘을 셈하며, 주인을 떠나보낸 침상은 여전히 쓸쓸한 온기로 가득하다. 한 자리를 맴도는 체취는 한결같으니 이번 아침도 별 다른 일이 없겠지. 끝을 기다리는 자들 뿐인 낙오자들의 마을에서는 더더욱 그럴 터였다. 무언가 거북한 활기, 이미 지나간 옛을 탐하고픈 뒤틀린 .. 2022. 7. 13.
맴도는 것들
현실에 주인공은 없다. 늘 그렇게 생각했다.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을 문장이라 여겼다. 빛나는 시절은 있겠으나, 결국 영원은 없을 테니까. 불안과 위안 사이를 걸으며 약간의 행복에 기대어 살아간다. 다만 이제야 되짚어 떠올리기에, 너무 급히 완결한 가치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영원할 수 없는 결론이었다. 사람은 모두 죽는다. 고리타분한 생각 끝에 옅은 한숨을 뱉는다. 그로부터 바람이 낮게 일어난다. 흐름은 지표면의 굴곡을 따라 굽이치고, 풀들은 일제히 휘청거렸다. 미약하게 남은 우울을 쓸어내던 풍랑이 허공으로 떠오르니, 시선은 기류를 따라서 멀어진다. 희미해진 기류 뒤편으로 푸른 달이 보인다. 달빛 사이에 숨은 온화함은 갈라진 마음을 또 한 번 긁어냈기에, 나는 발을 움직여 휘영청 떠오른 빛을 .. 2022. 4. 10.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