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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색29

어디에도
고요가 지나치다. 아스라이 남은 목소리와 눈빛, 차분한 웃음 가끔씩 드러나는, 그리움과 달라졌을 흔적마저 모두가 저변 아래에 묻혀 숨을 죽인지 오래다. 한 때는 남겨진 내가 안타까워 울었고 어느 날은 슬피 여기던 이유를 잊어 불안했으며 오늘은 그조차 지나가 덤덤한 삶이 비참할 따름이다. 그래, 익숙함이 지나쳤다. 나는 여전히 처음처럼 목청 높여 울어야 한다. 폐부의 호흡 한줌 남기지 않고 쉼 없이 흐느껴 놓친 것이 언제나 저변 위로 떠오르게 했어야 했다. 그리 뉘우쳐야 지나치지 않을 터다. 홀로 멀리 떠나버린 때와, 미처 알아채지 못한 때 그토록 어설프고 미숙하여 놓쳐버린 시절이 음성이 들리는 곳, 시선이 닿는 곳, 서로 마주볼 자리 누군가는 지나치다 말하도록 소중히 간직해 나를 더욱 더 살아가게 만들 .. 2024. 1. 5.
기도
열린 문 틈을 향해 수십 개의 물길이 뻗는다. 섞이지 못할 후회, 닮은 마음은 서로 배척한다. 불안을 감추려 끝없이 춤추는 나도 그러했다. 흔들리는 시선과 젖은 몸에 벌써 희미해진 날이다. 그리 흐려진 풍경이기에 몇 개의 선이 더욱 확연했다. 상석에서 우는 남자, 나는 그의 웃음을 혐오한다. 먼 길을 흘러 돌아온 바다보다 더없이 옅은 언제까지나 굳지 못할 피가 여전히 생생하다. 그래, 우리는 맞붙을 수 없다. 같은 뿌리를 공유하는 서로 다른 기둥, 그리고 그보다 많은 가지여. 위안을 찾아 떠도는 물병 안에서 얼키고 설킨 각자의 믿음들이여. 우리의 기도가 스스로의 신이 죽었음을 증명하니 더 구슬피 울라. 태어나 단지 끝을 약속한 삶을 한없이 헤아려, 끝내 기쁘다 여기면서. 2022. 8. 10.
죽은 별
수많은 안도 끝에, 먼 하루들이 쏟아져 내렸다. 보다 빛나던 날은 겁먹어 딛지 못한 길에 박히고 곧이어, 영원한 밤의 어스름이 짙어지며 깨우친다. 꿈결로 지어낸 낙원은 내 하늘에서 날 기다렸음을 어두운 밤은 품은 것의 윤곽마저 모조리 먹어치웠다. 도망쳐 얻어낸 삶은 여전히 꿈에 기대어 살았으니 내게 질린 희망이 사는 땅은 더 갈 길을 지워냈다. 두려움에 사무쳐 눈물로 새로운 망막을 만든다. 놓친 삶을 선명하게 할, 내 모자람을 밝힐 눈이었다. 먼 하루들이 발치에서 맥동하고 있기에, 밝은 땅을 보며 되새겼다. 돌이킨 시절은 여명이었으니, 지금은 황혼을 지났음이 명백했다. 너른 땅 어딘가, 나를 떠난 희망을 찾는다. 다시 꿈을 찾는다면 하늘은 다시 밝아올까? 비극을 지불하여 희극을 더욱 빛나게 만드는 여정을.. 2022. 6. 13.

오래된, 차마 잊지 못한 바람이 불어온다. 나지막한 그리움과 색 바랜 옛 장소들이다. 그리, 감정이 된 표정과 향으로만 남은 장면에 또 한 번, 여전한 아둔함이 사무치게 미워졌다. 그에 목젖에 매달린 불안이 아득한 빛을 좇는다. 바닥에 끌리던 목줄을 붙잡아 짧게 고쳐 쥐었고 갈라진 바람의 항로를 틀어 빛 저변에 두었으며 닿지 못할 말들을 깊은 주름 사이에 끼워 넣었다. 지난 삶의 오물을 지워낸 도화지에 옛 꿈을 덧칠한다. 즐거워, 손 틈으로 흘러간 시간을 안타까워할 여유를 잃어 여러 겹의 낮밤이 교차하고서, 새로운 바람이 불어온다. 이제 가벼이 회상할 경험이여, 그렇게 스스로를 완성하는 시절이여. 바깥에 꺼내 놓은 불온은 여전히 부족함을 일깨워 나를 헐뜯겠으나 그에 기꺼이 언제라도, 목줄 끝에 덧없음을 .. 2021. 10. 10.
영원한 악몽
한없이 익숙할 첫머리를 매만진다. 흐름을 잃은 마디가 손끝에 내려앉으니 어느덧 생경해진 감촉의 숨결이 들렸다. 그에, 우리는 초라한 내게 말했다. 네 삶으로 빚은 일을 두려워 말라며 우습기 짝이 없는 불안을 숨기라 했지. 당연히, 내 모두는 그 뜻을 알았고 이미 사무치도록 새긴 일이 오래였다. 때문에 더욱 아니길 간절히 소망했다. 그럴듯한 말로 치장해 오물을 반짝이고 빌려온 광휘 귀퉁이의 향을 온몸에 뿌렸으며 옛적에 잃은 편린을 들춰 잿더미에 불씨를 피웠다. 그래, 우리 모두는 제 주제를 안다. 그 어느 것 하나 알면서 행하지 않은 불합리한 자신들이니. 어찌 그리도 추한, 불안하리 너무나 가까운 이를 모르겠는가. 2021. 9. 27.
옹알이
여전히 붉은 살갗 아래, 공들여 닳아버린 마음이 헐떡인다. 한 때는 최선이라 믿었고, 지금도 믿어 의심치 않고 있건만 고심 끝에 내린 막 뒤편을 확인하고 싶은 이유는 무엇일까. 어둔 밤에 떠오르는 장면이 미워, 이불을 뒤집어 써 데웠다. 온 하루가 숨결이 되어 좁은 곳에 머무르니 숨이 막혀왔다. 억지로 호흡을 뱉어 빈 공간을 만든다. 번진 글과 흘러간 말을 주워 담아 마음 속에 기워냈으나 떠내려간 시절을 다시 표현하기엔 너무 달라진 자신이여. 홍조를 띈 가죽 아래, 미처 녹지 못한 서늘함을 보았는가. 내가 바란 길은 끝내 굽어져, 추억할 옛 자리로 돌아왔으나 언제나 쓰다듬어 닳아버린 약속들은 형태를 잃은지 오래다. 그리, 앞으로 물러난 나는 대체 어느 날이 그리웠을까. 아무 것도 모르던 때인가. 아니면,.. 2021. 7. 15.
취하지 않을
기움에도 넘어지지 않을, 혹은 않아야 할 하루를 한 날으로 축약하기에는 길었던 그 느리게 다가온 통증이 평범하기만 한 그 오 일을 지새운다는 것의 끝맺음에 흔들려도 내일을 그리며, 혹은 그저 바란 휴일은 다음 날의 하루보다도 짧게 느낄 이토록 빠른 행복들은 멀게만 보였기에 그 이틀을 떠나보낸 것의 다음 기약을 항상 취기가 오른 걸음으로 지나옴에도, 취하지 않을 나와 너, 우리들의 한 주를 구슬피 달콤히도 들이킴을 2021. 6. 4.
이루기를 이르며
꿈은 떠오르는 상념과 같아 이룸과는 멀어질 뿐 언젠가 바랐다는 것이 바래질 즈음에야 이상이라는 말에 숨은 어리석음을 봤고 지금껏 미뤘다는 것이 믿겨질 즈음에야 두려움 뒤에 피어난 욕심을 알아차렸다. 이룸은 진의가 없는 본심같아 꿈과는 멀어질 뿐 인전에 선명하던 것이 선망된 즈음에야 미화되었던 동기 곁의 질투심을 느꼈고 오늘도 상기했던 것이 상상될 즈음에야 꾸준한 걸음과 겹친 나태함을 떠올렸다. 이뤄냄은 꿈에 젖은 잠같아 이룸과는 멀어질 뿐 종래에도 이루기를 이르며, 남지 않을 미련을 두었다. 2021. 6. 4.
처마 끝
곁에 있고 싶은지, 아니면 곁에 두고 싶은지 죄는 없겠으나 분명 사할 것은 있었다면서 처마 끝, 고인 물에 비친 하늘은 검었었기에 여전히 고개를 떨군 채 앞을 확신하고 있는. 곁에 남고 싶은지, 아니면 곁을 뜨고 싶은지 후회는 있겠으나 분명 이 길이 맞겠다면서 처마 끝, 온기가 맴도는 이곳은 어두웠기에 타오르는 불 역시 세상에 침전할 것이라며 무채색, 삶은 곁에 남아있는 것이 아니기에 처마 끝, 흘러내리는 물줄기는 눈가 끝, 흘러내리는 안도감은 생의 끝, 흘러내리는 다짐마저 여전히 갈망하나 포기하고 있을 뿐이었다. 2021. 5. 24.
아래
빛이 저 너머로 여행을 떠나면 우리는 내일을 기약하기 위해 잠자리에 들 채비를 마쳤었다. 타고 남은 마음을 그러모으고 바닥을 구르는 말을 주워 담아 내 하루의 두 눈을 감겨주었다. 어둠 아래, 미련은 늘 체류하나 우리에게는 쉼이 필요할 뿐이다. 2021.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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