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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우울15

더, 더, 더
날개없는 피식자의 벼락질이었다. 그 자신이 풍랑의 예기라도 된 것처럼 폐를 조각낸 탄식을 바람이라 불렀다. 부디, 이 검은 깃털이 창공을 쪼길 때 일순이 피사체가 되어 머물러 달라고 죽어버린 나의 신에게 모진 말을 했다. 그래, 철새가 지나갔던 항로는 그랬다. 그저 한 삶이었고, 이전의 가르침이었다. 다만, 그 날갯죽지를 찢어버리고 싶다는 차게 끓어오른 낮은 감흥이 염원을 했지. 더 낮은 곳으로, 비탈길을 구르기 원했던가. 이 모든 모남이 고통에 찌그러져 끝나기를 살려달라는 아우성이 더는 비집지 못하도록 무지를 세워 깨달았었던 곳, 거기 말이야. 네가 줄곧 소망해왔던 낙원으로 가고 있어. 더는 최악을 말하지 않게, 진정한 종결으로 더, 더, 더… 조금만 불안을 뜯어먹으며 기다려줘. 담을 수 없던 것에 거.. 2021. 3. 10.
성정
깨진 유리의 균열 속에 일그러진 운명은 회복되기엔 그른 듯 했다. 굴곡은 음울한 색채를 튕겨 갈라진 음향을 울려내고는 적막 위로 올라서 울컥였다. 나는 짙은 한숨에 스스로 먹혀 검붉은 기침을 토해내고 있다. 세상에 떠 있는 밝은 빛에 의지하려다 눈이 멀어버린 자신을 미치도록 경멸하며 보이지 않는 모서리에 몰려 굽은 등을 차갑게 식히며 발 끝에서 불꽃을 피운다. 2021. 1. 21.
피학 어귀
기댈만한 곳은 더 이상 없다. 우두커니 서서 성을 내는 썩은 기둥 지독한 한이 호선에 얼음꽃을 피운다. 뒷걸음질은 기피를 밟고 머무르기만을 바랐었던 호흡은 풍압에 형태를 잃었다. 이렇게 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된 것이라고 자위한다. 덧없는 시간으로 쌓았었다. 퀴퀴한 향이 지나온 때를 추모함을 도서관의 한 책장, 작별 인사로 메워 탑이 기움을 더하고 그림자를 만든다. 피학 어귀, 서성임은 멈추지 않는다. 2020. 12. 21.

죽음을 기록하기 위해 나는 단지 흩뿌려졌다. 생명과 회복을 위하여 나는 그 뿐으로 쓰였다. 맑지만은 못한 것이 그렇다고, 마냥 더럽지는 못한 것이 어느 위인의 갈증이 어린 탄생의 귀퉁이 한 자리에 시간을 엮어 현재를 쓴다. 2020. 12. 16.
순수
작고 가녀린 손발은 귀하에겐 재앙으로 여겨졌겠죠. 아이는 순수함을 빗대어 책임 없이 돌아갔을 테고요. 졸지에 헐벗은 나무는 밤바람이 시려 몸을 덜덜 떨고 가장들은 모든 의미를 잃고, 포장된 땅 위에 서있네요. 당신의 심중이나 사연이 어떻든, 다음 날은 돌아오니 때 한 점 없는 옷을 입고 아이도 다시 이곳에 오겠죠. 부러진 가지, 도망치지 않는 개미가 을씨년스러웠을지 우렁찬 울음을 듣고 멀리에서부터 몰려오는 발걸음에 여러분의 마지막 흔적 또한, 아무 것도 아니게 될 테죠. 2020. 12. 16.
나체
시절 귀퉁이, 나체로 활보할 때가 있었다. 시선에서 벗어나, 없을 때를 기다리고 알지 못하는 곳을 섬세하게 그려본다. 먹먹함을 토해내도, 그것에 먹히지 않을 내가 아무 것도 아니게 될 곳을 그린다. 길게 빼어 든 혀로 초를 잰다. 이곳은 홀로 있어야 할 장소다. 침해받는 것이 아니라, 없어야 할 곳이다. 너는 절대로 이런 곳을 동경하지 말아라. 정체된 이 순간은 너무 높아 네가 보이기에 몸을 흔들어 없어진 때를 지워가야 하니까. 2020. 12. 4.
추락하는 말
소리를 벼랑에서 밀어내자 파동은 소름 끼치도록 무참히도 일그러졌었다. 너는 죽는 것도 아닐진대 왜 그리 슬피 우느냐고 의문 몇 방울, 저 아래 심연으로 떨어뜨렸다. 메아리는 울림을 잃고 비명은 규칙을 잊으며 아련하게도 깨져나갔다. 물끄러미 서 그 아래를 지켜보는, 나와 같이 2020. 12. 2.
군중의 고독
묽은 오물이 통로에 들어찼다. 비록 형식적인 걸음이나, 분명 길이었다. 모공과 입으로 뱉은 배설물이 썩어 든다. 이제 이곳에 누가 다닐까. 형체가 없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 온다. 텅 빈 거리, 각질 하나 떨어진 적 없는 골목 바닥 표면의 미세한 틈, 감당할 수 없음이 너무도 당연했기에 내 품 안에 숨어들었다. 불쾌하리 끈적한 검은 피가 심장을 에워싼다. 내 장기가 움직이는 그 소리에 위안을 얻으려 했다. 내 혈액이 헤매이는 그 반경을 돌보아 찾으려 했다. 내 마지막 기적들을 그 아이를 껴안아 지키려 했다. 피할 수 없었기에 많은 것을 버려 남기고자 했었지만 이 지독한 것이 내가 되어버린 다음 날은 결국 올 터다. 자세를 바꿔가며 이 길고 긴 밤을 지새운다.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 그것이기에, 기다릴 뿐.. 2020. 11. 5.
희미한 여명
두꺼운 솜으로 몸을 감싸고 입술 사이로 스미는 울음을 억누르기 위해 더 밀착하여 차게 밀려오는 밤바람으로 눈주름에 고여있는 잿물을 얼려 떨어뜨리기 위하기를 나는 눈가를 촉촉이 물들여 자라나 몇 안 되는 별빛을 곱게 뭉개어 밝게 비추니 엉킨 실타래로 차오를 뿐인 뇌리를 먹먹하게 눌러 달라 때 묻은 두 손 모아 빌었다. 쓰디 쓴 염원임을 앎에도 옛적의 희망인 걸 앎에도 그저 너무 짓눌린 삶이기에 홀로, 내 낮은 바람을 불러오고는 말을 삼켜대는 어리숙한 밤이여. 2020. 11. 2.
청빛 홍조
막 피어난 불을 짓눌렀다. 녹아내리는 살갖, 숨이 삼키는 열기가 차고 무의식이 새긴 방향으로 몸을 휘청인다. 많은 말을 했다. 힘없이 뱉은 심장의 고동이 들리지 않는다. 뜻을 탐한 단어에 나의 그릇된 욕망 또한 청색 불 위에 지펴 차가운 열의를 만든다. 설렘이 느껴졌다. 이성의 품 안에 잠들었던 홍조가 어렸다. 나의 감정이여, 나의 기억이여. 내가 잊은 나를 찾을 때까지는 이 혐오감이 내게서 떠나지 말기를 내가 나를 잊을 수 있을 때까지는 이 대지 위의 거름이 되지 않기를 나의 상흔이여, 나의 죄악이여. 나의 이 추악함을 깊이 박아넣어 언제나 동경할 수 있게만 해다오. 나의 악의가 영원히 머무르도록... 2020.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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