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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유는 없다

1. 달아나 닿은 낙원

by 연안 어귀 2023. 1. 13.

오래도록 이어지던 일과가 오늘을 기하여 마무리되었다.

 

전역을 앞둔 며칠의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으나, 머릿속에 남은 말과 장면은 꽤나 많은 편이었다. 어느 바람이 불었는지 내 마지막 석식을 함께한 행정보급관. 퇴근 중에 슬그머니 다가와 혹시 숨겨둔 탄피 없냐며 묻던 중대장.    그래도 네 마지막을 두 눈으로 보는 건 자신 뿐이라고 말하던 포술부사관. 동기 한 명 없는 군생활, 그래서 더욱 마음이 쓰였던 내 어리숙한 후임들.

 

모든 인연이 살포시 닿은 뒤 흘러내려가 각자의 이별을 완성하고 있었다. 그래, 끝내 길동무가 될 사람은 없다. 애써 무리를 지어도 결국 끈없는 연에 불과한 신세였으니, 마지막은 처음처럼 외로우리.

 

강원도의 거친 산세에 땅거미가 내려앉는 모습을 바라보며 담배를 입에 문다. 가지고 온 한 보루를 전부 다 태우면 밤이 몇 분 쯤은 밀려날까?

 

이제야 끼니를 해결하고 돌아오는 후임들이 마음의 간극처럼 까마득해 보였다. 폐부를 채우는 안개는 눅눅했기에, 매캐함이 그리워져 다급히 라이터를 켠다. 불꽃이 튀어올랐으나 불이 붙지는 않는다. 부싯돌을 수없이 부딪혀 얻은 건 엄지의 쓰라림 뿐이다.

    

그때, 계단을 따라 천천히 내려오던 군홧발 소리가 내게 물었다.

 

“뒷모습이 꽤 센치해?”

 

익숙한 목소리, 가벼운 말투와 어울리지 않는 낮은 음이 귓가를 간질였다. 오늘의 당직병 병장 전민성, 내가 처음으로 가르쳤던 녀석이었다. 그때의 나는 본부분대로써의 잡무나 관측 주특기 밖에 하지 못했지. 해서, 솔직히 민성이에게는 많은 도움이 되어주지는 못했었다.

 

“여기가 경치 하나는 좋잖냐. 이제 이걸 못 보는 건 좀 아쉬워서.”

“아쉬울 것도 없네.”

 

옆 자리에 앉은 전민성이 자연스럽게 불을 내밀었다. 담배를 입에 문 채 상체를 기울여 붙을 붙이고 다시 먼 풍경을 바라본다. 저물어가는 해가 그 짧은 사이에 보이지 않게 되었으니, 담뱃불은 좀 더 따스해졌다.

 

“담배 끊었다며?”

“끊었어.”

“…지금 들고 있는 건 뭔데?”

“보급관님이 빌려갔던 담배.”

 

전민성은 군화 뒷굽으로 바닥을 두어번 두드렸다. 자갈들이 조금씩 밀려나 흙바닥이 보인다. 우리 둘은 호흡을 깊게 들이켰고, 떨어진 담뱃재가 자갈을 달궜다.

 

“아, 중대 유일의 병장이셨던 혹한기 때?”

“나만 병장이었나?”

“그랬지. 근접 기수는 없었고, 두달 위 선임만 여섯이었으니까.”

 

몇 마디 말과 침묵을 더하니, 어느덧 완연한 밤이 되어 서로의 표정이 보이지 않는다. 작은 불씨가 드러내는 건 입주변의 윤곽 뿐이었기에 우리는 귀를 더욱 쫑긋 세웠다.

 

“혼자 고생했어.”

“…고맙다.”

“뭘, 후임이 줄 수 있는 게 뭐가 있다고.”

 

달이 미처 득세하지 못한 밤의 초입에서, 우리는 서로의 인연이 끝날 때에야 드러내기 부끄러웠던 마음을 내뱉는다. 민간인의 출입이 금지된 최전방에 자리한 연대, 온통 초록으로 물든 험준한 산악 지형 속의 젊은 남자들. 그토록 어설픈 우리들이기에, 마지막 송별조차 여느 날처럼 평안하게 이루어질 뿐이었다.

 

“새삼스럽지만, 넌 누가봐도 군생활 잘 했어. 내가 다 알지는 못해도 빚진 애들 꽤 많을 거야.”

 

연병장을 가로질러 흡연장으로 들어오는 후임들을 바라본다. 담배 한 대만 태운 뒤에 휴대폰을 불출받기 위해 다들 급한 걸음들이다. 그렇게 시야에 잡히는 인원 수만 해도 대략 마흔 명 남짓, 저 중에 찾으면 있기야 있겠지. 하지만 그렇더라도 내 선택들이 원론적으로 옳았음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그럴려나?”

 

민성을 바라보며 가볍게 웃는다. 오랜 후임의 덕담에 마주하여 홀가분한 끝을 연기한다. 수많은 기로를 돌아보며 응어리진 후회와 미련은 내 모든 발자취에 늘어붙었고, 천혜의 자연 속에 묻힌 인간은 비록 아득한 저변의 별빛보다는 어둡겠으나, 되려 그렇기에 우리의 거짓말이 서로에게 온전히 전해졌을 거라고.

 

우리는 그리 믿었다.

 

“춥다. 들어가자.”

“그래.”

 

얼마 태우지 않은 꽁초 두 개가 모래를 채워넣은 재떨이 위로 떨어진다. 우리는 흡연장으로 몰려드는 발소리를 뒤로하고, 약속이나 한 듯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       -   -   -

 

담배 냄새가 밴 손을 물로 씻어낸다. 포술관은 둘째를 낳은 뒤로 금연을 수 차례 시도하고 있었다. 그 탓에 대놓고 냄새를 풍기면 싫어하는 티를 노골적으로 냈지. 하지만 뭐랄까, 담배를 끊지 못하는 이유를 우리에게 전가시키는 것으로 보일 때가 많았다.

 

그래, 군대에서 배운 건 협동심이나 유대감 따위가 아니라 사람을 맘놓고 미워하는 법이었다. 다만 그로인해 곁에 두고 싶은 사람 역시 더욱 확연해졌으니, 이선영 병장과의 인연은 붙잡고 싶었다. 사회에서의 지위나 능력은 차치하고서라도, 언젠가 내가 그를 필요로 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믿지 않았지.’

 

내가 지금껏 경험한 이선영 병장은 극단적인 선택을 편애했다. 하지만 내 기억상으로는 분명, 일병 초 때까지는 그렇지 않았다. 군대가 그를 변화시켰다면 책임의 소지를 분명히 하고 싶었던 탓이 크겠지. 이선영 병장은 떳떳하지 못한 사람들을 혐오했으니까. 두려움에 사무친 어설픈 뒷공작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대가리를 박아 선임을 날려버리는 사람은 일찍이 들어본 적 없었다.

 

나도 그렇고, 그의 덕을 본 후임이 많다. 심지어 동기에게 알게 모르게 따돌림 당하던 선임마저도. 중대장이 그를 예뻐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지금껏 진급을 막아왔던 부분이 부대관리인데, 본인이 신경 쓸 구석이 거의 없어졌으니. 이번이 사실상 마지막 기회였는데, 어렴풋이 들리는 소문으로는 진급에 성공했다지? 행정보급관에게는… 전군 사열이나 새로운 양식이 필요할 때 살려달라고 말하면 살려주는 병사였으니. 이건 뭐, 중대의 엄마라는 보급관과 아빠라는 중대장 위에 웃어른이 한 분 더 계시는 게 아닌가.

 

실없는 생각에 가볍게 웃으며 상황실로 돌아오니, 병사들이 휴대폰을 받아가고 있었다. 생활복 군집 뒤로 슬쩍 보이는 전투복, 새치가 점점 늘어가는 포술관이다.

 

“어, 민성아. 애들이 마지막이니까 상황 볼 수 있는 애 한 명 불러라.”

“예, 데려오겠습니다.”

 

본부 소대 애들한테 부탁할까. 아무래도 그게 좋겠지. 상황실 바로 옆에 붙어있는 생활관에 노크를 하고 들어가자, 끝자리에 누워있는 이선영 병장이 보였다. 누구에게 빌렸는지 상태가 꽤 괜찮은 침낭 속에 들어가있었는데, 요즘 들어서는 아무 생활관에서나 자고 있을 때가 많았다.

 

“상황 봐줄 사람 한 명.”

 

나다 싶으면 가야하는 분위기를 만들었지만 나름 부탁이다. 아무렴, 가장 느린 군번을 콕 집어 지목하지는 않았으니까. 마침 가장 후임인 인사계가 본청에 서류를 가지러 갔으니, 이제 일꺽인 보급계원이 슬리퍼를 고쳐신으며 대답했다.

 

“제가 가겠습니다.”

 

내가 이토록 빠릿하다고 광고하는 듯한 부산스러운 몸놀림에 이선영 병장이 천천히 돌아누운다. 아무런 표정없이 나와 눈을 맞추더니 고저없는 목소리로 말한다.

 

“아냐, 가지마. 소초 애들이랑 전화 좀 하게.”

“어, 그러시겠습니까? 감사합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뭐.”

 

좋은 게 좋다라… 분명 괜찮은 말이다. 하지만 그건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일을 가리켜 말하지. 이선영 병장에게 득이 될 부분이 있나?

 

슬리퍼가 질질 끌리는 소리를 듣다가, 위화감을 느껴 널브러진 침낭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말끔하게 코팅된 주기의 디자인이 익숙하지 않다. 네모 칸을 채우기만한 무성의함은 온데간데 없고, 상사의 계급이 버젓이 걸려있었다.

 

“미친놈…”

 

내가 제대로 본 것이 맞나? 본 것을 의심할 여지 따위는 없었지만 내 눈이 이상하다며 따지고 싶다. 이선영 병장의 뒤를 쫓아 상황실로 향하니, 포술관이 팔자걸음으로 나오고 있었다.

 

“민간인이 상황 본댄다. 밥 묵자.”

“아직 열쇠 인계 안했습니다.”

“괜찮아, 임마. 교대 시간 멀었다.”

 

포술관의 어깨 너머로 이선영 병장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그는 허리를 제물로 바치는 자세로 수화기를 들어 전화를 걸고 있었다. 내가 익히 알고, 외웠던 그의 이미지와는 달리 한껏 풀어진 모습이다.

 

“갈비찜 다 뒤졌어.”

 

입맛을 다시며 걸어가는 포술관의 뒤를 따른다.

 

…그래, 아직 시간이 좀 남았으니까.

배가 많이 고프기도 하고.

 

-        -    -    -

 

상황실의 화상 회의 카메라 앞에 앉는다. 각 상황실은 아직 퇴근하지 않은 간부들이 있어 부산스러웠다. 독립 소초나, GOP 소초는 여전히 경직되어있다. 나를 알아본 상황 간부나 병들이 손을 살짝 흔들었다. 한 번 웃고는, 괜스레 비장한 표정으로 경례를 한다.

 

화상 회의에 알람이 뜬다.

중대 관할 소초, 4.2 였다.

 

[기분 째지냐?]

 

경박한 어투를 보아하니, 이번에도 중사 진급에 실패한 하사 같았다. 파견 간부 중에서 계급이 가장 낮다보니 선교대를 했을까? 환한 조명 아래에 앉아있음에도 얼굴이 다소 칙칙해보였다. 이제 볼 일 없으니 무능함을 살짝 돌려 까줄까 싶기도 했지만 그래서 무얼하랴.

 

[째집니다.]

 

적당히 받아주고는 소초에 전화를 건다. 아마 상황병 간 인수 인계 중이겠지. 신호가 가자마자 수화기가 들린다.

 

[통신보안, 4.2 소초 상병 지환유입니다.]

“어, 나야. 이선영.”

[필승! 오랜만입니다. 그런데 슬슬 말출 때 되지 않으셨습니까?]

“혹시 빨리 끊으라는 거야? 좀 서운한데.]

[하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마침 옆에 주간도 있으니 스피커로 돌리겠습니다.]

 

이윽고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뒤섞여들린다. 익숙한 음성 사이로 수화기가 맞붙는다. 그러자 소리가 한층 선명해지며, 어투만 담겨 흐릿했던 문장이 제 모습을 갖췄다.

 

[필승! 선영 씨도 복귀없이 자가전역 한다면서요?]

[선영아, 나도 데려가라! 휴가백에 넣어줘..!]

[그게 남은 일 대비 휴가 제일 많은 사람이 할 말입니까?]

 

일말 이화연, 새하얀 피부에 몸집이 작아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본부가 된 놈. 상말 최기정, GP 에 파견갈 인원이 없어서 보냈다가 본인 주특기를 다 까먹어 상황병이 된 놈. 상초 박정원, 부드러운 목소리와 정확한 발음, 나름 좋은 대학을 간판으로 가져 본부로 끌려온 놈. 사연들이 좀 그렇지만, 지금은 자기 위치에 대해 충분한 능력을 가진 녀석들이었다.

 

“기정이는 좀 꼴아도 된다. 오히려 그런 놈을 선임으로 둔 정원이가 고생이 많지.”

[오, 아무렇지 않게 내 욕하는 거 뭐야. 이게 민간인의 바이브인가?]

“그래, 군인이 어디서 민간인한테… 쓰읍. 어, 화연아. 그래서 전화했어. 이제 못 볼 테니까.”

[뭘 못 봐요. 생각나면 볼 수도 있지.]

[이선영 병장님한테 우리는 폐급이잖아. 보기 싫을 수도 있지.]

“박정원, 너 지금 내 성격 더럽다고 까는 거지.”

[티납니까?]

 

참으로 평범한 대화가 이어진다. 옛날, 우리 모두가 부족했던 때의 이야기. 군번이 꼬여 갓 상병이 된 내가 본부의 대빵이 되었을 때의 이야기. 그 모든 일들이 몇 마디 문장으로 표현되어 쏜살같이 지나간다.

 

수많은 사람이 오고 떠나는 부대에서 내가 특별해질 수 없는 이유였다. 민성이는 나를 각별하게 생각할지 몰라도… 군대는 그렇지 않다. 어떤 사람을 좋아하기에는 이곳은 너무 각박하고 열악했으며, 또한 강렬했었다.

 

“그래, 오래 붙잡아서 미안하다. 그만 쉬어라.”

 

그렇기에, 나는 끝없이 이어지던 말을 마무리하며 미안하다는 말을 달아두었다. 괜히 통화를 걸었나, 전역 전의 미묘한 감정들이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기분이다.

 

“…아쉽네.”

 

말 그대로, 끝에 다다르니 많은 것이 아쉬워졌다. 앞서 떠난 이들의 마음이 다 이랬을까?

 

옛 기억을 되짚어보니 저마다 다른 반응을 보였던 게 떠오른다. 그러니 그저, 나도 나만의 전역을 완성하는 게겠지.

민성이와 포술관이 오기를 기다리며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화면은 아버지가 보낸 문자로 가득했다.

 

[회사 동료 아들이 복귀 없이 전역했다던데, 너도 자가 전역하니?]

[터미널에 마중나가려 하는데 몇 시 까지 가면 될까?]

 

문장을 천천히 뜯어보니 우리 사이의 거리감이 아스라이 보이는 듯했다. 나와 아버지, 우리 부자가 개인적인 말을 그만둔지 너무 오래된 탓이다.

 

[바쁘시잖아요. 오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와 비슷한 말투의 답을 보내며, 휴대폰을 다시 주머니에 찔러넣는다. 모니터에 적힌 글자들을 보며 시간을 축낸다. 보급을 요청한 물자, 반납해야할 대여품, 기한이 만료된 화학장비 신청 서류와 증명, 이동 경로는 가득했으나 완전히 완료된 작업이 없다. 심지어, 두 달 전에 정비 보낸 장비는 항시 가용해야함에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면 그렇지.”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 이뤄질 일은 없다. 아무렴, 애초에 단체에서 비롯한 일이었으니. 점차 마음이 홀가분해지던 차에 페이지 뒤에 숨어있는 클립보드가 보였다. 인계인수가 필요한 사항을 누가 이렇게 겹쳐놨나. 하여튼, 꼼꼼하지 못하기는.

 

[전역모 – 교대 전, 박정원 일병이 XX리 2번길 13 군대박물관에 신청해놓았음. 금액은 각 병들에게 자원을 받아 납부 : 소대 본부 인원들, 근접 군번 4인. 박정원에게 인당 12000원. (전역모 수령은 오늘 복귀자들에게 물어보았음. 김민형 상병이 가져오겠다고 함.]

[냉동 – 그 외 무언가 받았거나, 커버 받았다고 생각되는 인원들이 전날 준비할 것.]

전투화 신품은 생명 매듭 없이 세팅해 2번 창고에 넣어놓았음.

광은 본부 막내가 만들어놨으니 당직이 적당히 눈치봐서 전달할 것.

 

“…”

 

짧은 글자들을 한숨에 읽어내려간 나는 페이지를 다시 뒤로 물렸다. …나에게 기쁨을 표하는 재주는 없는데, 애들이 실망할까? 복도 끝에서 군홧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해 복도로 나가 입구 쪽을 바라본다. 간부는 PX 막차를 타러갔는지, 홀로 걸어오는 민성이가 보였다.

 

아마 자리를 피해주는 편이 좋겠지. 그에게 손을 흔들어준 뒤, 반대편 복도로 몸을 돌린다.

 

중대 부지 전체를 돌았다. 쓰레기장은 막내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싸지방은 내기 게임하는 분대로 가득했으며, 체력단련실은 짙은 체취가 자욱하니, 이름을 따라서 향한 휴게실은 석식이 맘에 들지 않았던 이들로 바글거렸다. 하여, 기껏 찾아낸 쉴 곳은 샤워실이었다.

 

갈아입을 옷과 세면도구를 챙겨 내려온 이곳은 군대라기에는 너무 고요했다. 그런 시간이기는 하다. 일과가 끝나고, 하루를 보상 받으려 몸부림치는 시간이 아니던가. 당장 내일부터는 일과가 없는 주일이니, 몇 사람은 굳이 방문하지도 않을 터였다.

 

넓은 샤워실 안에 홀로 선다. 본래라면 수증기로 가득해 보이지 않을 모습들이 보인다. 누군가 잊고간 면도기, 병장 주기가 적힌 각종 세정제, 거울에 비친 내 모습. 나쁘지 않게 생겼지만, 딱히 오래 보고 싶지는 않았다.

 

딱히 할 일은 없으니, 그냥 뜨거운 물이나 맞자.

 

한참동안 물줄기 아래 서있으니, 공기가 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적막에 익숙해진 귀는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잡아낸다. 그 사이로, 슬리퍼를 질질 끌며 다가오는 인기척 또한 들려온다. 걸음걸이는 평소와 달랐으나, 탈의실에서 말하는 목소리는 익숙했다.

 

そこはどなたですか? (거기 누구십니까?)”

 

피로가 가득 담긴 음색, 그의 목소리는 언제나 쳐져있었다. 텐션은 항상 낮은 주제에 영어와 일본어, 한국어를 섞어쓰는 기괴한 놈이다.

 

“나야.”

“Don’t know because echoes. (울려서 모르겠는데.)”

“…마지막으로 뒤지고 싶다고?”

 

힘을 실어 말하자, 탈의실의 기척이 점차 빨라진다. 불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훌렁훌렁 벗어던지는 생활복이 보였다. 문을 벌컥 열으며 들어오는 녀석은 과장되게 웃고 있었다. 옅은 갈색 머리와 거뭇하게 탄 피부, 반짝이는 치아가 서로 대비를 이룬다.

 

“그럴리가요. 이선영 병장님.”

“매번 그렇게 말씀하시죠. 천승연 상병님.”

“이제 선임들한테 실수하지는 않잖습니까.”

“오, 나는 이제 선임이 아니다?”

“그냥 선임으로 대하시기를 바랍니까? 아니실 것 같은데.”

 

샤워기를 하나 건너 뛰어서 자리잡은 천승연이 물온도를 맞추며 되물었다.

 

“오, 눈치 없던 애가 이제야 나를 좀 아네.”

“제가 좀 부족하기는 했죠.”

 

아무튼 잘 되었다. 이 녀석과 함께 나가면 시간이 얼추 맞겠지. 이등병 때처럼 옆 사람의 박자에 맞춰 몸을 씻는다. 떠나가는 선임과, 남아있을 후임과의 사소한 예우였다.

 

샤워를 끝마친 뒤 마주한 중대는 어딘가 부산스러웠다. 복도에 옹기종기 모여 웅성대는 소리가 아래층까지 들려온다. 직속상관 전달사항이라도 생겼나? 계단을 올라 층계참에서 살펴보니, 허리에 손을 얹은 포술관이 보였다.

 

“금일 점호는 근무자신고와 병행하여 약식으로 진행한다!

 

나와 눈이 마주친 포술관이 오랜만의 군인다운 발성으로 소리쳤다.

 

“전역자 앞으로!”

 

아, 전역사… 어쩐지 일과 동안 조용하다 했어.

승연이가 말없이 내 세면도구들을 건네 받았고, 나는 계단을 마저 올라가 포술관 옆에 선다. 복도를 가득 채운 후임들의 면면을 살펴본다. 내가 잘 모르는 막내들은 자리에 없었다. 포술관은 이런 디테일을 모르는데, 이 전역사는 병장들이 입김이 닿은 모양이었다.

 

“그럼 이선영 병장의 전역사가 있겠다.”

 

포술관이 살며시 비켜서니 그토록 많은 시선이 나에게 꽃혔다. 동기 없는 설움을 실세가 되고부터는 느끼지 못했는데, 마지막이 되어 또다시 체감한다. 나눌 사람이 없는 경험은 쉽게 왜곡되고, 일그러진 잔상은 더욱 오래간다는 걸 안다.

 

나는 이 부대에서 어떤 사람이었지?

 

기억을 더듬는다. 일머리는 있지만 사회성이 없는 놈, 그게 나에 대한 첫 평가였다. 시간이 조금 지나 선임들과 능률이 비슷해졌을 때, 나는 그들에게 특이한 놈이 되었다. 그 뒤로 내 군번을 기준 삼아 위와 아래의 비율이 비슷해졌을 즈음, 나는 중대의 에이스가 되어있었다. 작업을 하던, 주특기를 하던, 간부를 보조하던… 내가 관여하지 않은 것이 없을 때에야 깨달은 위치였다.

 

솔직하게 말하자. 머리를 굴리면 말이 길어지니, 애들도 싫을 터였다. 계단 아래, 형광등이 깜빡이는 층계참 중앙에  멀거니 서있는 천승연을 바라보며 말한다. 복도에 있는 애들을 바라보면 언젠가 부담스러워 내가 말을 절을 테니까.

 

“너무 노력하지 말자. 어차피 포상에는 한계도 있고 우리는 GOP 들어가면 위로휴가가 나오니까. 부여받은 주특기만 잘하면 돼. 물론 필요 이상으로 무언가를 해내서 대우를 받을 때는 좋긴 한데, 따져보면 해낸 만큼 받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애초에 병의 직위로 수여받을 수 있는 보상은 병장쯤 되면 별 게 아니거든.

 

그러니까 아무도 다치지 말자. 경험상 규모 있는 훈련을 하게 되면 꼭 한 명씩은 다치더라고. 특히 일꺽부터 상초 애들. 그맘때면 자기도 모르게 무리를 하게 되니까. 서로 잘 살펴줘.”

 

그제야 고개를 들어 옆에 있는 포술관을 본다. 노력하지 말자거나, 다치지 말자거나와 같은 당부는 사실 식상한 전역사다. 다만, 그게 내 입에서 나왔다는 게 불편할 수 있다. 그들이 내 편의를 봐주었다는 건 확실하니까.

 

“나 병 출신이잖아, 새끼야.”

 

그의 말에 살짝 웃는다. 참, 포술관도 아직 이십대였지. 군인 아니랄까봐 액면가가 높단 말이야. 다소 경직되어있던 후임들도 포술관의 말을 듣고서야 자세를 푼다. 민성이가 일부러 큰 몸짓으로 박수를 쳤다. 그에 이어 몇 초간 박수 세례가 끝나고, 오늘의 점호를 약식으로 처리한 이유를 들을 때가 왔다.

 

“이제 막내들도 나와라!”

 

생활관 문틀에 옹기종기 모여있던 막내 군번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정렬한다.

 

“알다시피 내일은 주말이기도 하고, 동시에 선영이의 말출날이기도 하다. 자가전역하니까 사실상 마지막이지. 해서, 오늘 사령이신 인사과장님이 빚을 갚겠다고 하셨다.

 

첫째로, 자율 연등이다. 피곤한 사람들은 대전차 소대나 근무자 취침방에서 자도록.

둘째로, 분대장들이 계획한 냉동 파티는 보급관님이 반려했었지. 그런데 지난 달 부대 회식비가 좀 남았었다. 신예림 중사랑 김현규 하사가 배달음식을 좀 가져올 거다. 메뉴는 치킨, 피자, 햄버거. 너희들이 걷기로 한 돈은 신예림 중사한테 보내. 부족한 금액은 간부들이 나눠서 내마.

 

오늘 야간 근무자들은 좀 아쉽게 됐는데, 불쌍하다 싶으면 알아서 교대해라. 나중에 CCTV 기록지를 가지고 사유를 물어보면 냉동식품 취식으로 인한 단체 복통이라고 전달하면 된다.

 

자, 뭐라고?”

 

파격적인 이야기에 웅성대던 병사들이 해맑은 표정으로 복창한다.

 

“냉동식품 취식으로 인한 복통!”

 

상병장까지 목청을 높이니 온 복도가 쩌렁쩌렁 울린다. 복도의 유리창도 잘게 떨렸는데, 아마 옆 의무 중대까지 들리지 않았을까? 의무대 환자들이 몰래 담배피다 놀랐겠어. 괜한 생각이 닿아 웃음이 난다.

 

“…평소에도 이 정도 목소리면 얼마나 좋냐.”

 

포술관은 민성이에게서 인원 현황판을 건네들고서 복도에 나온 인원을 쭉 훑어봤다. 민성이에게만 들릴 소리로 기타 열외자에 대해 물어본 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현황판에서 시선을 거뒀다.

 

“이상, 점호 끝. 근무자 제외하고 해산.”

 

모든 인원들이 각자의 생활관으로 줄지어 들어간다. 왜 평온해야할 전역 전날밤이 이리도 혼란스러워졌을까. 계단을 올라온 천승연이 내 세면도구를 건넨다. 이제 쓸 일이 없는 물건이었기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 너희 막내 들어오면 주는 게 어때?”

“아, 이제 쓸 일 없으시죠. 그 말을 들으니 실감이 나네요.”

 

승연이가 양손에 세면바구니를 들고서 복도 끝으로 멀어진다. 대전차 소대의 위치는 박격포 소대와 거리가 있었기에, 그 걸음은 꽤나 길었다. 생활관으로 들어가면 간부들의 대우 덕에 애들의 호들갑을 들을 텐데, 그런 건 굳이 듣고 싶지 않았다. 포술관이 그렇게 말했다 뿐이지, 내 군생활은 누군가에게 화자될 정도로 이상적이지 못했으니까.

 

…잠깐 동안 보급관실에 있을까?

 

소파에 앉아 맛스타 하나를 한달음에 들이킨다. 가만 생각해보면, 이곳은 업무를 볼 때가 아니면 들어올 일이 없었다. 가끔은 느긋하게 들어와 농담이라도 몇 마디 주고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사실 나는 끝까지 여유가 없었던 게 아닐까. 마음이 복잡해 빈 캔을 손아귀 안에 구긴다. 그렇게나 기다리던 오늘이었다.

 

기껏 마지막 날이 되어서, 전입 첫날의 감상이 밀려들고 있었다. 더없이 기쁠 하루일 줄만 알았는데, 맛스타의 부족한 맛이 그저 씁쓸함으로 채워지는 듯했다.

 

복도를 오가는 발소리가 지속적으로 들려온다. 약간 들뜬 목소리 사이로, 나에 대한 질문도 간간이 들렸다. 이선영 병장님은 군생활을 어떻게 하셨길래 과장님한테 빚을 지웠나. 간부들이 사비를 써서 전역을 축하하는 건 처음 본다. 흔히 상상할 수 있는 말들이었다.

 

그 말에 가슴이 더욱 미어져, 나는 캔을 더욱 강하게 잡았다. 순간적으로 밀려오는 소름, 시원함을 느끼다 이내 알싸함을 보내오는 피부. 캔을 탁자 위에 내려두고 손가락을 보니 핏방울이 방울져 흘러내리고 있었다. 쓸데없는 감정이 과함을 그제야 느낀다. 캔을 쓰레기통에 던져넣고 서랍을 열어 구급함을 찾았다. 포장지가 뜯긴 파스들 뒤로 새로 보급받은 응급도구들이 보인다. 소독약, 연고, 반창고… 필요한 것들을 책상에 늘어놓고 상처를 감싸던 차에 보급관실의 문이 열린다. 포술관이었다.

 

“엉? 왜 여기있냐?”

 

그의 말투가 한없이 가벼워, 가라앉힌 기색에 다시 불이 붙었다. 미워할 대상이 생기자 길을 잃은 상념에 첨단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협조관님이 불편하게 만드셨지 않습니까?”

“이제 포술관이라니까. 그런데 뭐가 불편해? 에이스는 불편할 것도 참 없네.”

 

말끝을 길게 늘이며 빈정댄 포술관은 소파에 엉덩이를 붙였다. 그는 휴대폰 화면을 연신 확인하며 내게 말했다.

 

“너 하나 때문에 하는 일은 아니다. 마침 운영비 잔여분을 써야했는데, 마침 군생활 열심히 했던 놈이 전역하는 날이 있네. 그렇다고 매달하던대로 삼겹살이나 구워먹으면 효과가 없으니까. 열심히 하면 이정도 대우를 받는다는 걸 알려주려면 뭐가 좋을까. 일을 만든 이유는 그것 때문이야.”

 

나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마침 상황이 맞아떨어졌다는 변명을 거리낌없이 믿기에는, 군대는 일이 생겨나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는 걸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손가락에 붙인 반창고를 다시 고정하며 화제를 종식시킬 다른 말을 찾는다. 그렇게 포술관의 옆에 앉으며 물었다.

 

“음식은 몇 명으로 나눠야 됩니까?”

 

이상욱 중사는 뜬금없는 내 말에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냥 생활관 현재원 보고 뿌릴 거야.”

“그래요? 평소 같지 않네요.”

“그래, 군대 같지 않지?”

 

우리가 서로 알고 지낸 시간이 얼마더라. 그를 처음 만났을 때는 소대장의 히스테리를 받아주던 협조관에 지나지 않았다. 하여, 주변을 살필 여력이 없던 이등병 시절에는 그냥 상사를 잘못 만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일병 3 호봉 쯤인가?

 

안그래도 머리가 지끈거리던 소대 외박 날, 우리가 소대장이 데려왔던 가족의 하인 노릇을 하기 전까지는.

 

병사의 신분으로 증거를 모으기는 어려웠기에 나는 조력자를 찾아야했고, 마침 가장 가까운 이가 그를 혐오하고 있었으니. 오늘 같은 날, 우리 둘은 지금처럼 보급관실에 앉아있었다. 결심한 뒤의 일은 어렵지 않았다. 소대장은 본인의 행동이 정당하다 믿어의심치않는 사람이었고, 당시 소대장이었던 현 보급관이 그와 경쟁중이었으니까. 이해가 맞았을 뿐이다. 아까 덮고 있던 침낭을 떠올리며 작게 실소한다.

 

수많은 변명과 일말의 진심을 엮어내, 결국 서로 뒷짐진 채 악수한 말들은 뒤엉킨만큼이나 견고했다.

 

“이제 위병소 통과했다네.”

 

휴대폰 화면을 보고 있던 포술관이 먼저 방을 나선다. 곧, 각 생활관마다 두 명을 호출하는 방송이 울린다. 어디선가 홀연히 들려오는 ‘나다싶’ 소리에 막사 전체가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하고, 복도로 뛰쳐나오는 막내들의 발소리가 주차장 쪽으로 사라진다. 슬리퍼를 질질 끌며 방을 나오자, 계단 쪽으로 사라지는 애들의 꽁무니가 보였다.

 

누워있던 자리로 돌아간다. 일어났을 때와 다른 모양으로 놓여져있는 침낭, 아마 정리하려다 상사 계급 주기를 보고 놀란 게 아닐까. 막내들은 단순한 계급장에도 위압감을 느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침상 위에 올라가 다시 침낭 안으로 들어간다. 특 A급 침낭은 푹신하고 부드러웠다. 지금껏 자연스럽게 써왔던, 지워지지 않는 때와 한참 전에 죽은 솜을 연상하기 힘들 정도다.

 

자세를 잡고 누워 천장을 보니 남아있던 인원이 알아서 안쪽 등을 꺼주었다. 한창 실세 때나 받았던 대우를 이제와서 또 받다니. 내가 숨어있는 동안 어떤 이야기가 오갔던 걸까. 조미료가 꽤 많이 첨가되었을 듯 싶었다. 눈을 감고서 수많은 발소리들을 듣는다. 전투화 소리, 슬리퍼 끄는 소리, 단독 군장이 맞부딪혀 덜그럭 거리는 소리…

 

“각 분대장 행보관실으로!”

 

포술관의 외침이 막사를 쩌렁쩌렁 울리기에, 나는 좀 더 침낭 안으로 파고 들었다. 내 견장은 색을 잃은지 오래다. 분배가 다 끝나면 어련히 내 것이 남아있겠지. 시간은 언제나 상황을 가라앉힌다며, 두 눈과 귀를 닫은 채 기다린다. 생활관의 등이 다시 켜진 건 그 직후였다. 인기척은 꽤 많았고, 옆자리에 음식들을 내려놓음과 함께 내게 말한다.

 

“이선영 씨, 일어나세요-”

 

침낭을 느릿하게 걷으며 주변을 바라보니, 분대장들과 두 달 차이 병장들이 있었다. 어떤 관점으로 보아도 한없이 부담스러운 장면이었다. 병장들이 내 옆에 붙어앉고, 분대장들이 음식들을 세팅한다. 내 의문에 대한 답은 생활관 문틀에 기대있던 전민성이 들려주었다.

 

“전역빵 생각은 없어. 우리도 느낌이 새로워서 그래.”

 

내 옆에 앉다보니 창가 바로 아래로 간 차병호가 민성이의 말에 치를 떨었다.

 

“어휴, 오글거려. 그냥 중대 맞선임이라 몰려왔다하면 되는 걸.”

“이 새끼는 항상 이러니까 우리가 소개를 해줘도 모쏠인 거야.”

 

자리에 앉자마자 닭다리를 집어든 김동숙이 그 말에 태클을 건다. 이제 서로를 공격하는 게 일상인 놈들이 어떻게 이등병 때는 그렇게 잘 붙어다녔지. 평소처럼 서로 삿대질하기 시작한 녀석들을 뒤로하고 피자 한 조각을 들어올린다. 가져오는 동안 살짝 식어, 치즈가 늘어날지언정 흘러내리지 못했다.

 

하긴, 조명 한 점 없는 산속의 밤은 언제나 서늘하기는 했다. 입술 앞까지 다가온 피자를 두고서 민성이에게 손짓한다. 그는 본인의 당직마크를 두드리며 쓰게 웃을 뿐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적당한 말장난을 치며 음식을 먹고, 화제가 떨어지니 각자의 입대일에 맞춘 노래를 틀며 짬찌 시절 이야기를 한다. 그마저도 끝나니 남자들끼리 할만한 이야기는 이미 동났을 때가 되었다. 왜 그랬는지, 바깥의 이야기는 은연 중에 멀리했으니 그럴만도 했다.

 

돌고돌아 각 분대의 막내 이야기, 요즘 군대 편하다는 이야기가 나올 즈음이었다. 그것이 못내 불편했는지, 가장 계급이 낮은 분대장이 내게 질문했다. 군번이 꼬여, 갓 상병이 된 녀석이었다.

 

“선영아, 근데 인사과장님이 갚겠다는 빚이 뭐야?”

 

나는 잠시 골똘히 생각했다. 가벼운 사담을 나누거나, 업무상의 교류는 꽤 나눴지만 마음의 빚을 지울만한 일은 없었다. 내가 좀처럼 대답하지 못하자, 지칠줄 모르고 먹던 김동숙이 그에 답변했다. 입가에 잔뜩 묻은 기름이 번들거렸다.

 

“너 전입왔을 때 탈영병 이야기는 들었지?”

“예, 그것 때문에 이병들은 상병 이상 통솔자가 동행해야 움직일 수 있게 바뀌었다고 들었습니다..”

“그 놈 잡은 사람이 선영이야. 무려 인사과장님의 진급을 지켜줬지.”

 

…그런 사연이 있었나? 모든 간부들이 연대 지역을 벗어나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라고는 했었는데. 나는 그저 연대 포상을 받았다는 게 기꺼웠을 뿐이었다.

 

“아, 나도 탈영병 한 번만 잡으면 말출 만박인데…”

 

창문 밖의 난간에 두었던 콜라를 꺼내마시던 차병호가 상상하기도 싫은 헛소리를 하기 시작하니, 김동숙이 또다시 태클을 건다.

 

“니가? 저 강원도 산기슭에서 탈영병을?”

 

조금 찾다 뻗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결이 비슷한 지적들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단지 차병호의 동기 뿐만 아니라, 슬슬 사람들이 편해지기 시작한 분대장들까지 입을 맞춘다.

 

“와, 나도 선영이처럼 이빨 다 빠졌네…”

“그것도 정정해야지. 선영이는 그냥 귀찮아서 안 무는 거야.”

 

그들의 끝날줄 모르는 유치한 말싸움에, 결국 나도 가볍게 웃음짓고 말았다. 내 웃음에 모든 잡담이 멈추고, 서로 시선을 교환하던 녀석들은 담배를 피러가자며 일어났다. 나는 같이 태우자는 말에 고개를 저었고, 되려 한 개비가 부족한 보루를 꺼내며 말했다.

 

“이거 사 만원에 살 사람?”

 

벌써부터 입에 꽁초를 물고 있던 차병호가 손을 번쩍 들며 반응했다. 이게 행보관이 내게 준 선물이라는 걸 알아도 저렇게 득달같을까? 상황실을 오가며 자리를 지키던 민성이의 표정이 잠시 해괴해졌으나, 어차피 내게 쓸모없는 물건이니 이해할 것이라 믿는다.

 

“나, 나! 돈은 외박 때 보냈던 계좌로 보내주면 되지?”

“어… 그게 국민인가, 기업인가?”

 

이게 스피드퀴즈도 아니고, 내 대답은 듣지도 않고서 휴대폰을 매만지던 차병호가 답했다.

 

“국민!”

 

그와 함께 휴대폰에 알람이 뜬다. 다들 쓰는 송금앱, 차병호 이름으로 4만원.

 

“성격도 급하지.”

 

나는 보루를 가볍게 던졌고, 신나는 표정으로 건네받은 차병호의 안색이 잠깐 굳는다. 시선은 뜯겨있는 포장재를 향해있다. 설마, 내가 수지타산이 안맞는 교환을 걸었다고 생각했을까? 한 보루가 맞는지 눈으로 훑고서, 개봉 흔적이 있는 담배갑을 열던 녀석에게 말한다.

 

“딱 한 개비 폈어.”

“아, 그렇지?”

 

놈의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문 앞에서 기다리던 차병호의 동기들이 ‘저 새끼는 머리길러도 연애 못한다.’ 라며 수근대는 것이 들렸다. 그에 맞서 소리치며 차병호가 따라가자, 생활관을 가득 채웠던 실세들이 사라진 자리만큼의 고요가 자리했다. 오직, 담배를 피지않는 분대장 두 명만 남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제 정리할까?”

 

자리를 끝내자는 내 말에, 그들은 생활관 문 근처에 모여있던 일병들을 불러 한바탕 소란이 지난 침상을 훝어냈다. 저마다 조금씩 다른 소란스러움이 복도로 밀려들고 있다. 전부 비슷한 연령대의 남자들이 모인 집단인지라, 식사가 끝나는 시점이 비슷하다. 흡연장으로, 분리수거장으로, 취사장의 짬통으로… 통로에서 만난 발길은 또다시 계급에 따라 나눠진다.

 

그렇게 귀를 기울이니 그 중에서도 유일한 발걸음이 들려온다. 문틀을 두드리는 손가락, 포술관이었다. 그의 손에는 익숙한 모습의 종이가 들려있다. 아마, 연대 앞에서 터미널까지가는 편도행 차표일 거다.

 

“과장님이 보내신 전역 선물이다.”

“그렇습니까.”

 

자리에서 일어나 차표를 받아든 채, 나는 잠시 갈등했다. 인사를 드리러 가야할까? 굳이? 표정에 고민이 드러난듯, 포술관은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솔직히 평하자면, 감사를 표할 필요는 없을 단촐한 답례다. 그도 그를 바라지 않았을까. 그런 마음에 티켓을 가볍게 주머니에 털어넣었다.

 

“나중에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

“그럴게.”

 

우리가 많은 내용이 생략된 말을 나누는 동안, 본관을 통해 올라오는 군홧발 소리가 울렸다. 군장이 맞부딪히는 소리나 방탄을 거칠게 벗는 소음은 들리지 않았다. 내 성향을 아시는 과장님이 직접 오셨을까? 아니, 누군가 부담스러울 상황을 만드실 분은 아니다. 포술관의 어깨 너머로 계단을 바라보니, 앞머리만 살짝 남기고 깔끔하게 밀어낸 머리가 떠오르고 있었다.

 

“필승! 상병 김민형, 휴가 복귀했습니다.”

 

나와 포술관은 고개를 살짝 까딱였다. 경례를 마친 김민형은 웃음기를 감추지 않으며 우리에게 다가왔고, 복도로 완전히 들어선 뒤 코를 미미하게 움찔댔다. 흘깃, 생활관 안쪽을 살핀 그는 아쉽다는 듯 말했다.

 

“나름 빨리 온 건데, 냉동파티는 벌써 끝나신 겁니까?”

 

우리는 잠시 적절한 대답을 골몰하다, 결국 상황실 탁자에 쌓아둔 치킨과 피자 박스를 가리켰다. 김민형의 눈이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쉴틈없이 굴렀다. 하지만 군대의 사고방식으로는 낼 수 없는 정답이다. 되려, 아직 적응하지 못한 신병이나 답을 유추할 수 있겠지.

 

“먼저 복귀한 인원들이 사온 건가요?”

 

그나마 스스로 말이 되는 이야기를 만들어낸 김민형은 휴가백에서 내 전역모를 주섬주섬 꺼냈다. 근접기수 넷, 나에게 주특기와 업무를 배웠던 본부분대 인원들의 자수가 가득했다. 못해도 일년 이상 함께한 이름들이다. 한없이 생경하기만 하다. 클립보드를 보았을 때의 우려와 같다. 속절없이 밀려드는 감정은 기쁨이 아니라, 군생활 전체의 표상이 단출한 점에서 오는 아쉬움 뿐이었다.

 

“…고맙다.”

 

그런 와중에 행복을 연기하는 건 어려웠기에, 상황에 어울리게 꾸밀 수 있는 감정은 오직 어색함 뿐이었다. 완성되지 못한 감사는 유종의 미가 될 수 없기에 서로의 말이 늘어져간다.

 

“다들 자기 이름을 넣으려다보니 좀 지저분하게 되었습니다.”

 

내 반응 탓에 김민형은 잡히지도 않는 뒷머리를 연신 매만진다.

 

“아니야. 이런 물건은 오히려 과한 편이 나아.”

 

말이라도 쾌활하게 내뱉으며 전역모를 건네받는다. 이젠 내 머리가 꽤나 기니, 베레모보다 한 치수 큰 호수였다. 눌리는 감 하나없이 가볍게 눌러쓴 뒤에야 그에게 묻는다.

 

“어울리냐?”

“에이스처럼 보입니다.”

 

김민형은 그제야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웃었고, 나는 그의 표정을 모사해 미소지었다.

 

“요 몇 년간 봤던 것 중에 가장 화려하긴하네.”

 

잠시 물러나있던 포술관도 턱을 쓸며 전역모를 평했다. 그 뒤로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음식 냄새를 없애라는 말에 모든 창을 열고, 환기를 하는 김에 청소도 조금 앞당겨 수행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도와줄까 싶어 소매를 걷었지만, 손에 들린 도구는 후임들에게 죄다 뺏겨버려 침상으로 돌아와 매트를 깔고 누웠다. 반대쪽 침상을 다 정리한 막내들은 나를 매트 째로 들어 반대로 옮겼다.

 

“내가 무슨 환자니?”

“민간인이 군대에 있는데 정상은 아니죠.”

 

과한 대우가 불편해 제지하자 막내들이 장난스런 농담으로 응수했다. 내가 떠날 사람이라는 걸 이제야 체감한 모양이었다. 이들의 언행이 서로 어긋났듯, 전역 직전의 위치는 이토록 미묘하다. 사람들의 반응을 빌려 마지막이라는 단어의 색감이 다채롭게 덧칠되고 있다.

 

“그래요, 한낱 민간인이 군인들을 방해할 수는 없죠.”

 

자조적으로 말하며 침상에서 일어나니, 기다렸다는 듯 매트를 접어 정리하는 녀석들을 뒤로한 채 발길을 돌려 흡연장으로 향한다. 끝을 되뇌어보니 시작이 떠올랐기에, 그때보다 확실히 나아진 후임들의 분위기를 보며 감정을 조절하기가 힘들었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인사말에 반응해주니, 어느덧 달빛에 의지해 담배 꽁초를 줍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생활복 지퍼를 목끝까지 올리고 바지끝단은 살짝 접어 양말에 넣어서 발목이 보이게 한 차림이 눈에 띈다. 차병호 놈의 소대 막내들이다. 그 녀석은 다른 부조리는 끔찍하게 싫어했지만, 계급에 따라 복장이나 행동에 차별화를 두는 건 일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실은 당연한 건데 마치 뭐랄까… 보상 받는 기분이 들었어.’

 

내가 상말이었을 때, 타 부대의 훈련에 지원나가서 나눴던 말이 생생하게 들리는 듯했다. 단지 포반의 운용만을 보여주면 되었기에 시간이 많이 남았었고, 대화가 늘어지던 새벽에 차병호의 진심어린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었다. 나는 그들을 존중했고, 내게 빚이 있는 간부들을 설득했다. 비록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으나, 작금이 되어서는 예전보다 나아졌다는 평이 많았다.

 

바깥처럼 존대를 쓰거나, 복장에 차별화를 두거나, 더 많은 업무를 지지만 소대 외박이 잦거나… 전 소대원들의 의견을 취합해 전부 다시 편성했으니 문제가 생길 일도 없었다. 그로부터 특이한 문화도 생겼는데, 주특기의 수행에 문제가 없을 경우 병사의 인사이동을 병사가 직접 중대장에게 신청하는 기이한 현상이었다.

 

그러다보니 GOP 생활을 더 좋아하는 놈은 알박기를 시전하는 경우도 생겼고, 당장 지금도 가진 휴가가 두달을 넘는 괴물이 세 명이나 있었다. 그놈들은 아마… 중대장의 지적에 다음 달에 같이 만박을 나온다지? 만박이면 일시적인 땜빵이어도 휴가가 쏠쏠할 테니 가려는 놈도 많을 터였다. 결론적으로, 애써 바꾼 체제는 병사들의 능률 향상에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훈련이나 작업에 대한 사기가 눈에 띄자 좋아지자, 최근에는 본부 중대도 우리의 편성을 일부 베껴 가져갔다. 요즘은 서로의 주특기를 배우려는 진풍경이 펼쳐지는 중이라고 전해 들었다. 사족이 길었지만 아무튼, 각 소대는 확연히 구분되는 특징을 가지게 되었다.

 

현관에서 가장 가까운 벤치에 앉아 연병장을 멍하니 바라본다. 주특기 훈련 때 포가 방열되었던 자리는 온통 울퉁불퉁했다.

 

“한 대 드릴까요?”

 

청소가 끝난 김일병이 곁에 앉아 호의를 표했으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제 받은 것을 돌려줄 수 없다. 내 반응에 김일병은 본인의 무리로 돌아가 담배를 물었다. 그나저나 몇 시나 되었나… 휴대폰을 꺼내어 확인한 시각은 여덟 시, 알림창엔 짧은 통보가 있었다. 아버지였다.

 

[오전 시간은 미리 빼놨다. 터미널에서 기다리고 있으마.]

 

“그러면 그렇지.”

 

늘 그랬듯, 내 의사 따위는 중요치 않은 사람이다. 염치 불고하고 담배를 받을 걸 그랬나. 아랫 입술을 살짝 깨물며 내일을 상상해본다. 보기만 해도 답답한 완전한 정장 차림에 티끌 한 점 묻지 않은 새까만 중형 세단… 설마 기사까지 대동하고 오지는 않겠지. 그래도 눈치가 없지는 않으니 혼자 올 거다.

 

“이선영 병장님, 저희 먼저 올라가보겠습니다. 수고하십쇼.”

“어, 수고했어.”

 

계단을 딛는 발소리들이 밤의 적막을 깨트린다. 산세를 따라 도는 바람소리와 풀벌레의 울음이 묻히고, 그에 제멋대로 뛰던 심박은 규칙적인 걸음과 호흡을 맞춘다. 그렇게 모든 불씨가 물러난 흡연장 위에서 더욱 밝게 빛나기 시작하는 달을 올려다본다. 처연한 빛줄기가 수없이 산란되어 땅에 닿는다. 완연한 밤이 대지에 맞닿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적막은 그렇게 완성된다. 이제 아무도 없다. 천천히 긴장을 풀자, 조금씩 쌓였던 한숨이 통째로 빠져나온다. 심장과 폐를 밖으로 뱉어낸듯, 가슴 전체가 공허를 말하는 느낌이 든다. 허전함을 채울 길이 없어 눈길이 정처없이 흔들리고, 시선은 온 풍경을 훑은 뒤에야 힘없이 늘어진 팔다리를 만났다. 머릿속에 그려놓은 세상 속에서, 맨 마지막에 따라온 피사체는 늘 그렇듯 나 자신이었다.

 

“…하아.”

 

텅 비어버린 시간은 언제나처럼 버겁다. 달아나 도달한 곳은 낙원이 될 수 없으니, 고여 썩을 것이 아니라면 결국 돌아가야만 한다. 그래, 이제 바깥으로 나가야한다. 아들된 자로써, 그리고 아비된 자로써. 두 남자는 오직 미련만으로 다른 곳을 바라보아야만 했다.

 

[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유예된 날이 흐를 때가 다가왔다.

 

필히 해야할 일들이 끝난 중대는 고요했다. 각자의 책임을 조금씩 내려놓은듯, 훨씬 가벼워진 속삭임들이 얇은 벽을 타고 흘렀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휴대폰의 사용은 우리가 잠시 떠나있을 공간을 마련해주었다. 서로를 대하는 방식이 점차 달라지기 시작했지.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군대는 개인을 존중할 수 없었으니, 각자의 이름을 밝히는 건 바깥의 형상 뿐이다.

 

눈꺼풀을 조심스레 들어올린다.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달빛 한 조각이 최소한의 윤곽만을 드러내고 있었다. 한데, 시선을 빼앗는 물건이 없어도 잡다한 상념이 끊이질 않는다. 그에 고개를 돌려 옆자리에 누워있는 김동숙을 바라본다. 내가 뒤척일 때마다 그만 자라는 말을 해주던 그도 어느새 잠들어 옅은 숨을 내쉬고 있었다.

 

잠을 청하기는 이미 글렀다. 아무도 모르게끔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적어놓았던 이름이 한참 전에 닳아보이지 않게 된 슬리퍼를 신고 복도로 나간다. 아직 불이 켜져있는 생활관도 있다. 무언가 켜놓은 채 깜박 잠이 들었거나, 아침을 신경쓰지 않는 놈이 있거나 둘 중 하나겠지.

 

휘적휘적 걸어 복도 한 가운데에 있는 공용 냉장고를 열어본다. 주기를 적어놓은 간식, 취사장에서 남은 부식이 들어있었다. 개 중에는 민성이가 넣어놓은 음식도 있었다. 올해부터 병장 월급이 늘어났다고, 가끔 먹던 물건으로만 사온 것이 못내 웃겼다. 커피를 꺼내 주둥이 부분을 손가락 끝으로 붙잡은 채 상황실로 들어간다.

 

포술관은 어디론가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불침번도 도망갔는지 상황을 보고 있는 건 전민성 한 명이었다. 탁상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열쇠 두 개가 그의 처지를 알려주었다. 병사들의 분위기가 들떠 간부들의 마음까지 풀렸을까. 슬슬 얼굴에 피로가 묻어나기 시작한 전민성은 본인의 휴대폰을 연신 매만지고 있었다. 아무리 편한 날이라해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할만해보인다?”

“자리 비울 동안 졸지 말라고 꺼내주더라.”

“어디갔는데?”

“남은 음식 가지고 본청 갔지.”

 

말을 건 뒤에야 휴대폰을 내려놓은 전민성은 의자에 앉은 채 몸을 여러방향으로 비틀었다. 굳은 몸이 연신 비명을 지른다. 이어서 축 늘어진 자세로 서랍을 뒤지더니, 미리 작성해둔 일정표를 확인하고는 미간을 지그시 누르며 눈을 질끈 감는다.

 

“회의에서 배수로 체크하라고 하던데.”

“글쎄? 이쪽은 이맘때면 아직 눈이지 않나.”

“작년에는 그렇긴 했지.”

 

전민성은 내 말에 호응하며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통신보안, 탄약고 근무자 일병 이승원입니다.]

“어, 지금 외부 온도 몇이냐?”

[확인해보겠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내외초가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온다. 부산스러운 기색이 전해지는 것이 전화가 온 김에 위치를 다시 바꾸는 듯 싶었다.

 

[통신보안, 탄약고 근무자 상병 이석호입니다. 외부 온도 영하 2도로 나옵니다.]

“날씨 좀 풀리는가 싶더니 또 춥네.”

 

역시 놀라운 강원도, 경칩을 훌쩍 지났는데 여전히 영하다. 저 아랫쪽은 벚꽃이 피기 시작했다는데 이쪽은 상록수을 제하면 아직도 풍경이 황량하다. 전민성은 통신을 스피커 모드로 변경한 뒤, 지금까지 기록해놓은 온도를 조금씩 낮췄다.

 

[저 그런데 혹시…]

“왜, 너도 똥 마렵냐?”

 

전민성의 반응을 보아하니 매 타임마다 벌어지고 있는 이벤트 같았다. 양측에서 새어나오는 허허로운 웃음이 상황실을 채웠다. 하기야, 짬밥 먹다가 갑자기 기름진 음식을 넣으면 배가 아플만도 하다.

 

“근데 지금 불침번이 신병인데 어쩌냐? 사관도 없는 마당에.”

[아, 남은 시간동안 못 참을 것 같은데 아직 안자는 사람 없습니까?]

 

가만, 안자는 사람?

 

그 말에 전민성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내 모습을 머리부터 발 끝까지 훑어본 그는 두 눈을 천천히 깜박거렸다. 그냥 말년도 아니고, 몇 시간 후면 전역하는 사람에게 부탁하기가 어려운 모양이었다. 잠도 안오는 마당에 대충 자리만 지켜줄까.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여주자, 전민성은 그제야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야, 석호야… 사람이 있기는 한데 우리 인원이 아니다.”

[그게 무슨 소리…]

 

이석호의 말끝이 조금씩 흐려지더니 이내 잠잠해진다. 적막이 짙게 깔리자 수화기로부터 들리지않던 올빼미 울음 소리가 넘어왔다.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간다.”

 

다른 말이 나오기 전에 쐐기를 박는다. 경험상 이런 상황이 생기면 고민하던 끝에 초소 옆에 똥을 지려놓는 경우가 있었다. 얼어붙은 변은 냄새를 풍기지 않으니 이맘때면 한 번씩 벌어지는 일이다. 어려운 일도 아니고, 굳이 그런 꼴을 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생활관으로 돌아가 전투복으로 환복한다. 몇 번 입지 않아 더욱 빳빳한 촉감, 옷감이 구겨질 때마다 작은 소음이 난다. 서랍을 여니 포장을 뜯지않은 두꺼운 고무링과 새 양말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이것만 남겨두며 상상했던 아침의 풍경은 아니지만, 이 또한 나쁘지 않았다. 더없이 익숙한 느낌이다. 착장을 끝낸 뒤 문을 열고 나오니 한층 서늘해진 공기가 느껴졌다. 야간 근무 투입 때의 감각은 늘 비슷하다.

 

중앙현관 쪽으로 걸음을 향한다. 딱딱한 전투화 밑창이 계단을 두드리고, 유리문 뒤쪽 벤치에 앉아있는 인영이 보였다. 선명한 불꽃을 입에 문 그가 내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하지만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먹구름이 가득한 밤하늘일지라도 알아볼 수 있었으니까.

 

“당직이 자리를 비워?”

 

입에서 연기를 뿜어낸 전민성이 본인의 생각을 말한다.

 

“내가 가고, 네가 상황을 보는 게 맞지 않을까 싶은데.”

 

그의 생각에 동의한다. 내 선택이 되려 석호와 민성이를 불편하게 만든다는 사실은 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나는 앞으로 볼 일 없는 사람이니, 마음에만 남을 빚은 금방 잊혀질 터다.

 

“승원이랑 노가리 좀 까려고.”

“…”

 

전민성은 꽁초를 바닥에 버린 뒤 짓밟으며 일어섰다. 아까처럼 길다란 꽁초가 눈에 밟혔다.

 

“알았어. 대신 석호가 좀 늦을 거야.”

 

그도 앞으로 더 많이 볼 사람을 택했다.

 

나는 연병장을 가로질러 탄약고로 향했다. 본래의 투입로는 이쪽이 아니지만 훨씬 빨랐다. 너른 땅을 걸으니 칼바람이 가감없이 와닿는다. 머리는 길러서 괜찮았지만 손이 시리다. 그에 걸음을 빨리하고,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넣은채 돌계단을 내려간다.

 

“정지! 카라멜.”

 

어렴풋이 경계 초소가 보일 때쯤 암구호를 묻는다. 음, 나오기 전에 보는 걸 깜박했다.

 

“그걸 민간인이 알겠냐?”

 

내 잘못을 포장해 후임에게 던진다. 이승원은 그런 내가 신기한지 히죽히죽 웃었다. 내초의 문이 스르륵 열리더니, 창백해진 이석호가 천천히 걸어나왔다. 열린 문틈으로는 방탄과 판을 삽입하지 않은 탄조끼, 경계 방향으로 거치해놓은 총기가 보였다.

 

“…감사합니다.”

“안색 하얀 것 봐. 엉덩이에 힘주고 빡 가야겠네.”

 

내가 내려왔던 길을 그대로 거슬러 오르는 이석호의 뒷모습을 보던 나는 그대로 내초로 들어갔다. 장구류는 일절 건들지 않은채 거치된 총기를 집어든다. 바람이 차니 창문을 닫아야지. 총만 대충 몸에 붙여둔 채로 바닥에 주저앉는다.

 

“한숨도 못 자신 겁니까?”

 

졸지에 사방 경계를 시작한 이승원이 내게 물었다. 계속 힘을 줬다 푸는 손이 보이고, 조금씩 움직이는 발소리가 들렸다.

 

“조금씩 잔 거 같은데. 그런데 너는 파카 입고 투입하지 왜 야상이냐?”

“어… 스키파카는 지난 주에 수거했습니다.”

“그래? 나는 열외하고부터 진작에 뺏겨서 몰랐네.”

 

아직 한창 때의 일병과 대화를 나누니, 서로의 생활이 너무나 다르다는 것만 체감된다. 어중간한 말을 하면 놀리는 게 될 것 같은데.

 

“나가시면 뭐부터 하실 겁니까?”

“글쎄. 계획대로 되는 일이 워낙 적어서.”

“뭘 산다거나, 먹는다거나… 간단한 거요.”

 

이승원의 말이 다나까에서 존칭으로 바뀐다. 변화를 즉시 느끼는 걸로 미루어보니, 나는 아직 군인 티를 벗지못한 사람이었다.

 

“그런 거라면… 그냥 늘어지게 자려고.”

“그건 주말이나 휴가 때도 똑같지 않아요?”

“내가 달라질 게 있나. 그냥 날이 온 건데.”

 

우리의 대화는 그쯤에서 끝났다. 일병 초에 불과한 후임은 군대와 관련된 이야깃거리가 없었고, 나는 바깥의 일을 가져오기 싫었으니까. 그렇다고 군생활의 팁을 주기에는 나는 사람을 잘 대하지 못했다. 경사면을 따라 우는 바람소리,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짐승들의 울음소리. 편안한 울림들이다.

 

그제서야 잠이 밀려온다. 텁텁하고 건조한 공기를 들이키며, 약하게 틀어놓은 라디에이터에 기대어 눈을 감는다. 점차 의식이 멀어지는 와중에, 참으로 특이한 울음소리가 아스라이 울려퍼진다.

 

“캬아아악-! 와아악-!”

 

무겁게 감겼던 눈이 살짝 떠진다. 이승원이 흠칫 놀라며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돌아선다. 그래, 모든 자연물이 아름답지는 않지. 저 눈치없는 고라니만큼은 제하자고. 그의 반응에 옛 생각이 난다. 모든 게 어설펐던 시절이 흐릿하게 떠오르고, 미화된 추억을 마주한 입가에는 가벼운 미소가 달렸다. 그로부터 점차적으로 감각이 둔해진다.

 

그림자 속에 숨어있던 몽롱함이 몸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한 줄기 빛이 머리를 관통한다. 그에 눈을 부릅뜨고서 총을 고쳐잡는다. 귓속에서 울리는 이명에 시선이 흔들렸다. 잠이 덜 깬 정신을 다급히 붙잡으며 위치를 가늠한다. 야간의 소음은 분지 안에 갇혀 메아리치고 있었다. 발원지를 알 수 없다. 당장 중대로… 아니, 절차가 중요한 게 아니다. 손을 뻗어 핫라인의 수화기를 붙잡으며 부사수석에 손을 뻗는다.

 

“하 키 내놔!”

 

몇 초가 흐른다. 그제서야 주변이 달라졌다는 현실을 인지한다. 훨씬 우거져있는 나무들과 을씨년스러운 경계 초소, 창문이 있던 자리는 휑하고 지붕은 거친 풍랑에 조금씩 흔들렸다. 본래 후임이 서있어야할 공간에는 엄폐물이 없다. 나는 옛 기억에서 몇 마디 말을 끄집어낸다. 현 행보관이 막걸리를 한 잔 걸치고서 했던 말이었다.

 

‘야, 지금 이 정도면 존나 괜찮은 거야. 원래는 말이야! 지붕은 대충 얹어놓고 위장도 없었고! 창문이나 가림막은 당연히 없던데다 부사수 자리는 뻥 뚫려있었어!’

‘소대장님, 그게 대체 언제적 이야기입니까?’

 

대작하던 선임들이 묻자, 그는 대답했다.

 

‘나 막 임관하고 여기 왔을 때.’

 

손에 들고 있는 핫라인은 구형 장비에 유선 전화기는 없다. 탄통은 바닥에 널브러진 채 봉인을 활짝 열고 있다. 그리고 또 한 번, 멍한 머리가 날카롭게 진동한다.

 

확실하다. 잠결에 잘못 듣지 않았다. 수없이 들었던 소리, 그건 방금까지만 해도 한없이 평온했던 방향에서 들려왔다.

 

총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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