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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
황혼의 첫 단추, 노랗게 물드는 빛을 보며 나는 다음 날의 탄생을 기대하는 이였다. 늙음 끝에 다른 생을 기약하는 자연들 당연한 듯 곱게 피어날 미래를 기다리는 그런 끝맺음이 좋아도 설명하지 못했다. 어둑해지는 세상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렇게 홀로 훌쩍이며 뒷걸음질 치는 그들을 그렇게 그저 어딘가의 끝자락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시절은 숨을 돌리지 않아 나는 어른이 되어야 했고 한 겨울, 어둑한 모퉁이에서 차분히 만개할 그 익숙하던 빛줄기가 그토록 보고 싶어서 새벽 공기 마시며 네 웃음을 기다리는 지금이 그리 기대가 되어 두 볼에 시린 홍조가 일었다. 돌아온 계절 속, 나는 또 다시 몸을 뉘일 곳을 찾으니 이제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의 품을 한없이 헤매어 불안하기 짝이 없을 네 곁에 머물러 이기심을 채운다. 2020. 12. 8.
이유
날마다 몸을 일으켜 떠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푸른 여명 아래, 꺾인 발자국이 즐비한 거리 위 녹아내린 밑창에 멈춰 선 우리들을 목격했었다. 어쩌면, 자욱한 꿈결 안에서 눈을 잃지 않았던가. 그리 허망함을 표하여 펜을 잡을 핑계를 대었다. 곧게 편 허리에 제멋대로 휜 손가락이 겹치고 색 바랜 시간을 역하게 느껴, 잉크를 뿌려냈다. 이 활자들은 무엇을 동경하여 이다지도 욕됄까. 어느 날, 여전히 후일이 오기를 바라마지 않을 끝 앞에서 심연을 마주하여도 알지 못할 터였다. 별 이유 없을 황혼을 지새워 그리며, 오늘을 세고 탓함은 언제나 친숙한 것에 있음을 앎에 흐느낀다. 그렇게, 내게는 별 볼 일 없을 하루가 또 다가온다. 2020. 11. 21.
그리웠다
여명과 황혼의 입맞춤이 사그라드는 눈꺼풀 위로 떠오르는 아득한 풍경에 나는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밝음과 어두움이 공존하는 하늘을 보고 검은 호수 안에 일렁이는 것을 떠올리며 나는 조심스레 고개를 흔들었다. 단지, 그리웠던 것일지도 몰랐다. 어릴 적의 이유 없는 울음소리에 밀려난 소싯적의 외침 없는 절규 속에 피어났던 시들어버린 나의 꿈을 그린 걸지도 라며 그리 나는 스스로에게 되묻고 있었다. 단지, 나는 이런 글이 그리웠던 건지도 몰랐다. 꺼질듯 일렁이는 불꽃을 빈틈없이 감싸 쥐며 홀로 일렁이는 불씨가 내 품 안에서 싹을 틔우길 단지, 나는 그때의 내가 그리웠던 것이었다. 2020. 10. 24.
첫걸음
미처 굳지 못한 점토로 발자국을 찍어냈었고 녹슨 행로가 야위어가지 않도록 비벼댔으며 우윳빛 호수 안에 잠든 작은 하늘을 보았다. 분명 홀로 고개를 떨구며 자리를 잡았지만 풍랑은 곁으로 와 피륙을 넘은 반려가 되어 연어는 발치에 기대어 생명을 뱉어냈었다. 눈가의 호선을 따라 그려진 물길을 타고 의미를 넘어선 연유를 찾아 손을 담갔다. 북쪽, 눈꽃을 가루 내어 만든 백색 사막에 정처 없던 발길을 멈추고 여린 발바닥을 처음답도록 한 번, 조심스레 찍어냈었다. 2020.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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