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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우울

군중의 고독

by 연안 어귀 2020. 11. 5.

묽은 오물이 통로에 들어찼다.

 

비록 형식적인 걸음이나, 분명 길이었다.

모공과 입으로 뱉은 배설물이 썩어 든다.

 

이제 이곳에 누가 다닐까.

 

형체가 없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 온다.

 

텅 빈 거리, 각질 하나 떨어진 적 없는 골목

바닥 표면의 미세한 틈, 감당할 수 없음이

너무도 당연했기에 내 품 안에 숨어들었다.

 

불쾌하리 끈적한 검은 피가 심장을 에워싼다.

 

내 장기가 움직이는 그 소리에 위안을 얻으려 했다.

내 혈액이 헤매이는 그 반경을 돌보아 찾으려 했다.

내 마지막 기적들을 그 아이를 껴안아 지키려 했다.

 

피할 수 없었기에 많은 것을 버려 남기고자 했었지만

이 지독한 것이 내가 되어버린 다음 날은 결국 올 터다.

 

자세를 바꿔가며 이 길고 긴 밤을 지새운다.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 그것이기에, 기다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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