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질지 않은 비가 내렸다.
세차게 우산을 두드리던 아이가
며칠 밤 사이에 배려를 배웠다.
높은 곳에 매달린 가로등 불이
깊은 물 속 정경처럼 흐릿하다.
이빨 빠진 아귀가 있었다.
숨이 꺼지지 않을 정도로만
물줄기가 그의 입을 덮는다.
내가 있는 자리를 비추는 길
무심한, 그 위로를 걷는다.
이 심중을 닮아가고 있다면
우울은 더 이상 슬픔이 아니라
그저, 일상의 한 귀퉁이로 남아서
비가 다시 내리는 이 모습처럼
본인에게로 먼 길을 돌아오겠지.
다만, 익숙해져 기다림이 될 때
나는 이 정처없이 내리는 비에
흠뻑, 내 살갖을 모두 적시리라고.
유심한, 그런 기대를 걷겠다.
내가 이슬이 되어 내리기를 바라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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