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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할 때까지는
돌아가야 했었고, 다시금 출발했었던 길로 그저 하염없이 걷다 보니 또 돌아와 버렸다. 발자국을 깊이 새겨, 그 시절을 잊지 않도록 아득히도 떠올렸던 터라 작더라도 무거웠다. 그을음이 미처 닿지 못한 곳으로, 천천히 토해냈던 검붉은 불이 사그라든 장소에서 이번의 첫 호흡을 내쉬기만을 바라 왔었고 적어도, 이 무릎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는 다시 돌아와 시작하길 두려워하지 않아야 그래야만 내가 살아왔음을 잊지 않을 테다. 스스로의 길을 택하여, 한 줌의 혐오도 없길 이 세상이 끝나는 가파른 절벽을 마주하여도 그 아래로 육신을 던지는 걸 주저하지 않기를 단지, 곁에 누군가 있다면 질문할 터였다. 이 결말이 당신을 구슬프게 하지는 않느냐고. 2020. 10. 27.
가장 낮은 곳, 그 위에서
난, 아직은 머물러야 했다. 후에 맞이할 빛에 눈이 멀기 위해서는 당분간 이 어두운 공간에 남아야 했다. 나 자신이 슬프다는 것을 자각하면 그보다 애처로운 일은 없을 것이라 그리 다독이며 이곳에 정을 떨군다. 더 이상 내려다볼 곳이 없던가. 아니, 분명 최악은 아닐 것이라고 명확하지 못한, 흐릿한 것이 있다. 때가 되어 아래를 올려다보고 나서 저곳보다 나를 알던 순간이 없다고 그리 외면해보며 고향을 속여본다. 지나온 길이 너무도 부실했던 탓에 결국 돌아가지 못한다는 탓을 했다. 내가 자리한 곳은 언제나 낮기만 하다. 2020. 10. 26.
어느 날, 그다음을
계절이 허구로 돌아간 세상, 풍경은 변하지 않고 이상은 망상 중 하나가 되어 주검조차 흩어낸다. 이보다 최악인 것은 없었으니 내일은 다를 거라 믿어보며 저 먼발치에 시선을 밀었다. 여전히 추운 낮에 태양마저 죽었다. 검붉은 노을이 조각나는 때, 촛불로 길을 밝혔다. 창공조차 가린 막막함이 기어코 코 앞에 굴러왔다. 잠시 망설이다 녹아든 신발 한 짝을 멀리 던졌다. 몇 차례 굴러갔을까, 신을 수 없을 만큼 더러워졌다. 우두커니 선 채, 나는 나의 맨발을 바라보았다. 붉은 기포가 들끓어 피부로 스며들고 내가 밀어낸 이가 누운 곳의 옆에서 긴 여정을 끝마쳤으나, 성과가 없던 그런 길에서 메마른 끝을 기다렸다. 고작, 이렇게 매듭짓기 위해 살아왔던가. 달조차 뜨지 않은 한스러운 대지였지만 내가 기댄 곳은 유난히.. 2020. 10. 26.
추위
거짓이 옅게 늘어졌다. 그림자를 속이려 하니 언젠가는 잊게 되었다. 진실이 얇게 끊어졌다. 나조차 진위를 모르니 파문이 흐름을 잃었다. 수렁의 밧줄이 내린다. 광채를 가장한 악의가 덧없이 손에 들어왔다. 2020. 10. 25.
알 수 없었다
분명히 잠에서 깨어난 적이 없다. 얼음이 녹아들어 웅덩이가 고였고 야윈 가지로 마음을 애태운 수목이 서서히 고개를 들어 볼 때가 왔다. 우리는 약속을 지킬 필요가 없었다. 좀 더 가벼워진 몸이나, 어느 한 곳 집어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유난히 무겁게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초록이 만연하게 피어나기 전에 추위를 상자에 넣어 후로 보낸다. 정말 여기있는 내가, 지금 이 순간 그들의 사연에 영향을 받았다면 고민할 사유가 있어야 했었을까. 2020. 10. 25.
안주
잔재만 남아 이젠 형상이 흐릿하다. 아주 가까웠던 유습한 기억일진대 추억이 되어 회상할 처지가 되었다. 혹여 다시 과거를 구성한다 하여도 내게 같은 모습으로 인식되지 않아 영원히 아름답게만 남아 빛바래질까. 애써 부정하여 밀어낼 필요가 없어 그저 흔적으로 만족하면, 그렇다면 나는 나로서 남아있기나 한 걸까. 2020. 10. 24.
그리웠다
여명과 황혼의 입맞춤이 사그라드는 눈꺼풀 위로 떠오르는 아득한 풍경에 나는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밝음과 어두움이 공존하는 하늘을 보고 검은 호수 안에 일렁이는 것을 떠올리며 나는 조심스레 고개를 흔들었다. 단지, 그리웠던 것일지도 몰랐다. 어릴 적의 이유 없는 울음소리에 밀려난 소싯적의 외침 없는 절규 속에 피어났던 시들어버린 나의 꿈을 그린 걸지도 라며 그리 나는 스스로에게 되묻고 있었다. 단지, 나는 이런 글이 그리웠던 건지도 몰랐다. 꺼질듯 일렁이는 불꽃을 빈틈없이 감싸 쥐며 홀로 일렁이는 불씨가 내 품 안에서 싹을 틔우길 단지, 나는 그때의 내가 그리웠던 것이었다. 2020. 10. 24.
여정
언제나 같은 곳에서 나는 다시 돌아오기 위한 길을 걸었다. 명확한 지표가 없는 임무, 내가 삼키지 못한 한숨이다. 시작을 선택한 적이 없기에 끝이라도 내가 정하려 했다. 만개한 하늘이 또 한 번 한 떨기 져버리고 말았을 즈음 숨결로 빚어 새긴 그림에서, 나는 두려움을 느껴야 했다. 아무것도 확연하게 드러나있지 않은, 허망한 희망을 좇은 그 모습을 떠올리니 손 때 묻은 첨단이 내게 달려들었다. 애처롭게도 고찰은 의미를 퇴색시키고 말았기에 나는 이곳에서 잔류하는 법을 배워야만 했었으며 나 자신을 잊는 법을 장님처럼 헤아려가야 했다. 여전히, 내게 주어진 여정은 아직도 앞이 보이지 않는다. 2020. 10. 23.
홀로
짧았다고 느낀 잠에서 깨어나 옆으로 손을 내밀어 볼 때면 곁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홀로 아미를 찡그려 웃는다. 빛을 가린 커튼을 옆으로 밀어 보아도 눈앞에 보이는 건 빛이 아닌 열기 뿐 의미를 퇴색시키는 그릇된 열정과 자아를 잊어버리고만 비뚤어진 삶이 슬며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와 문득, 닮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울고 싶어도 웃으라고 웃고 싶으면 더 크게 분명 그리 살아가라 했다. 허나, 그뿐이었다. 빛이 스며드는 창가에 걸터앉아 나의 땀으로 푹 절여진 잠자리를 보며 버릇이 돼버린 웃음을 짓는다. 꿈은 얼마나 행복하냐는 물음을 담아. 2020.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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