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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말
소리를 벼랑에서 밀어내자 파동은 소름 끼치도록 무참히도 일그러졌었다. 너는 죽는 것도 아닐진대 왜 그리 슬피 우느냐고 의문 몇 방울, 저 아래 심연으로 떨어뜨렸다. 메아리는 울림을 잃고 비명은 규칙을 잊으며 아련하게도 깨져나갔다. 물끄러미 서 그 아래를 지켜보는, 나와 같이 2020. 12. 2.
새벽녘
누구나 한 때의 불로 태어났으니, 언제고 다시 피워낼 수 있으리. 이미 잿더미로 뒤덮인 대지 위에서 세상을 처음 만났더라도 내 몸 하나 불사를 것이 남았다면야, 포기할 이유는 없으니 밤을 몰아내는 횃불을 자처해 일렁이는 꽃잎으로 스러져라. 혹시라도, 꿈이 너무 드높아 네가 이미 한 떨기 떨어졌다면 그 다음에는 내가 네 잔재를 긁어모아 또 한 번 피워주겠다. 한사코 삶이 친절하지 못할지라도 결국 아침은 돌아올 테니 그 하루를 되감아 풀어내기를 항상 앎에, 두려워하지 말거라. 2020. 12. 1.
구석
녹아내린 발로 서늘한 바닥을 딛고 한 걸음마다 한숨을 자욱이 쉬며 어느새 어둑하게 그늘진 구석으로 메어오는 목의 끝자락 비명처럼 신뢰성을 잃은 옛이야기처럼 모순된 성정 같이 무엇도 볼 수 없는 그곳이 그리도 따뜻하게 느껴졌었다. 웅크려 앉아 앞을 보면 먼지 사이를 차분히 채워 들어오는 빛이 보이나 가벼운 화상 입을 것을 염려하여 두 무릎을 모아 안아버렸다. 2020. 11. 28.
작은 손
투박하기만 한 손바닥은 네 손등을 덮어줌으로 모든 걸 다한 듯 느꼈다. 황혼이 붉게 타올라 쓰러질 때쯤 눈이 마주칠 때 웃어주는 것 마저 한 폭의 수채화와 같이 추상적인 기억으로 마음 한 켠의 추억으로만 고이 간직 되어질 휑하니 빈 옆자리가 너무도 시려울 어느 여름날 오직 나만이 회상할, 따스한 겨울날의 그 작은 손. 2020. 11. 25.

한 층 두껍게 좀 더 강하게 꼬옥 꼭 눌러 한 껏 무엇을 한 번을 위해 꼬옥 꼭 눌러 좀 더 소중한 작은 널 위해 꼬옥 꼭 눌러 꼭, 만족하길 2020. 11. 24.

세월을 쓸어와 발 아래에 두고 이미 옛적에 죽은 불빛을 켜니 잿더미의 한 켠에 내가 보였다. 아주 조금 젊은, 고작 며칠 전. 앞을 시리도록 비추는 광명 속 지나가버린 후회를 추모하고 가라앉은 위안 안에 운명했다. 이토록 위약을 더욱 드높게 세워내어 살가죽 안에 새겨진 의미를 들춰내니 이는 곧 황혼이 된 지금을 풀이하겠지. 그러니, 우리는 이를 다시 고이 모아서 쌓여갈 뿐인 한탄을 명명하길 반복하여 아득하니 아주 오래도록 죽어갈 뿐이니 이는 결국, 내 삶의 단 한 줄기 빛이니리. 2020. 11. 24.
편지
낡음에 뭉개진 글자가 즐비했으나 나는 좀처럼 읽어낼 수가 없었다. 여림이 자라나, 그 명랑한 이상을 그저 서서히 키워나갈 때였을까. 거친 손길이 이 날을 해칠까 두려워 무심코 눈물을 짜내어 적셔내었다. 축축이 젖은 글이 번져 지워졌을까. 나는 또 한 번의 편지를 적어내었다. 어느 미래에, 읽을 수 없는 나에게. 2020. 11. 21.
이유
날마다 몸을 일으켜 떠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푸른 여명 아래, 꺾인 발자국이 즐비한 거리 위 녹아내린 밑창에 멈춰 선 우리들을 목격했었다. 어쩌면, 자욱한 꿈결 안에서 눈을 잃지 않았던가. 그리 허망함을 표하여 펜을 잡을 핑계를 대었다. 곧게 편 허리에 제멋대로 휜 손가락이 겹치고 색 바랜 시간을 역하게 느껴, 잉크를 뿌려냈다. 이 활자들은 무엇을 동경하여 이다지도 욕됄까. 어느 날, 여전히 후일이 오기를 바라마지 않을 끝 앞에서 심연을 마주하여도 알지 못할 터였다. 별 이유 없을 황혼을 지새워 그리며, 오늘을 세고 탓함은 언제나 친숙한 것에 있음을 앎에 흐느낀다. 그렇게, 내게는 별 볼 일 없을 하루가 또 다가온다. 2020. 11. 21.
헤아리다
녹슨 추의 바닥에 저울을 가져다 대었다. 어느 때인가, 무죄의 무게에 고개를 숙인 저지르지 않은 잘못에 마음을 졸이던 날 그 하루의 끝이 아닌 시작을 바랐던 나를 언젠가 올 때, 엮지 못한 손가락을 세우며 새기지 않은 약속에 온 기대를 보내던 날 그 하루의 맺음이 아닌 영원을 바란 나를 옛적에 한쪽으로 기울어진 애꾸의 눈물은 낯익은 꿈결에 파묻혀 당연히 여겨질 테니 그 착각의 깨우침이 아닌 우매함을 바라며 헤아림을 포기할 수 있는 법을 헤매이며 바닥에 닿은 수많은 추를 받치는 날들을 그렇게 생의 영원이 아닌 맺음을 바란 나를 저울판의 바닥에 내 살갗을 가져다 뉘이며 없을 날 중, 바람이 멎을 시기를 헤아린다. 2020.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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