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102


오래된, 차마 잊지 못한 바람이 불어온다. 나지막한 그리움과 색 바랜 옛 장소들이다. 그리, 감정이 된 표정과 향으로만 남은 장면에 또 한 번, 여전한 아둔함이 사무치게 미워졌다. 그에 목젖에 매달린 불안이 아득한 빛을 좇는다. 바닥에 끌리던 목줄을 붙잡아 짧게 고쳐 쥐었고 갈라진 바람의 항로를 틀어 빛 저변에 두었으며 닿지 못할 말들을 깊은 주름 사이에 끼워 넣었다. 지난 삶의 오물을 지워낸 도화지에 옛 꿈을 덧칠한다. 즐거워, 손 틈으로 흘러간 시간을 안타까워할 여유를 잃어 여러 겹의 낮밤이 교차하고서, 새로운 바람이 불어온다. 이제 가벼이 회상할 경험이여, 그렇게 스스로를 완성하는 시절이여. 바깥에 꺼내 놓은 불온은 여전히 부족함을 일깨워 나를 헐뜯겠으나 그에 기꺼이 언제라도, 목줄 끝에 덧없음을 .. 2021. 10. 10.
옛에게
늘 그랬듯, 최대한 담담히 흐느꼈다. 먼 하루의 끝자락을 붙잡은 채 기울었으며 끝내 턱끝을 치켜들어 무너지지 않으려 했다. 어린 내게 보이기엔 너무나 추레하다. 그렇기에 바랜 옛으로 돌아가자. 되짚은 게 두렵지 않을, 멀지 않은 일로 그리하여 먼 어제의, 아스라이 들리는 약속이 있었다. 고작 이제 맞잡은 손을 시작으로 운명을 함께하자며 멀기만 한 끝을 그리는 네가 아직도 눈에 선했다. 오늘의 나에게는 너무나 눈부신 일이다. 그렇기에 닳은 옛으로 돌아가자. 어둔 밤에 사무쳐 익숙해진, 여전한 일로. 그곳에는 먼 추억의, 선이 뭉개진 장면이 있었다. 아련한 목소리와 드문드문 끊어진 손길이 닿았다. 떠오른 기색이 가라앉아, 가장 먼 내일을 바라본다. 잠들지 못한 꿈과 위로의 잔해 사이로 언젠가의 옛이 될 내가.. 2021. 10. 5.
영원한 악몽
한없이 익숙할 첫머리를 매만진다. 흐름을 잃은 마디가 손끝에 내려앉으니 어느덧 생경해진 감촉의 숨결이 들렸다. 그에, 우리는 초라한 내게 말했다. 네 삶으로 빚은 일을 두려워 말라며 우습기 짝이 없는 불안을 숨기라 했지. 당연히, 내 모두는 그 뜻을 알았고 이미 사무치도록 새긴 일이 오래였다. 때문에 더욱 아니길 간절히 소망했다. 그럴듯한 말로 치장해 오물을 반짝이고 빌려온 광휘 귀퉁이의 향을 온몸에 뿌렸으며 옛적에 잃은 편린을 들춰 잿더미에 불씨를 피웠다. 그래, 우리 모두는 제 주제를 안다. 그 어느 것 하나 알면서 행하지 않은 불합리한 자신들이니. 어찌 그리도 추한, 불안하리 너무나 가까운 이를 모르겠는가. 2021. 9. 27.
옹알이
여전히 붉은 살갗 아래, 공들여 닳아버린 마음이 헐떡인다. 한 때는 최선이라 믿었고, 지금도 믿어 의심치 않고 있건만 고심 끝에 내린 막 뒤편을 확인하고 싶은 이유는 무엇일까. 어둔 밤에 떠오르는 장면이 미워, 이불을 뒤집어 써 데웠다. 온 하루가 숨결이 되어 좁은 곳에 머무르니 숨이 막혀왔다. 억지로 호흡을 뱉어 빈 공간을 만든다. 번진 글과 흘러간 말을 주워 담아 마음 속에 기워냈으나 떠내려간 시절을 다시 표현하기엔 너무 달라진 자신이여. 홍조를 띈 가죽 아래, 미처 녹지 못한 서늘함을 보았는가. 내가 바란 길은 끝내 굽어져, 추억할 옛 자리로 돌아왔으나 언제나 쓰다듬어 닳아버린 약속들은 형태를 잃은지 오래다. 그리, 앞으로 물러난 나는 대체 어느 날이 그리웠을까. 아무 것도 모르던 때인가. 아니면,.. 2021. 7. 15.
아득함이
밤마다 두려움을 셈하기가 질린 때다. 표정을 잃은 감정에게서 느낀 불안감을 재우고 나아가지 못하는 바람을 달래는 법을 배우며 신뢰를 품에 끌어안은 채 아쉬움과 작별했다. 아침마다 허전함을 달래기가 힘겨웠다. 말을 잃은 입술은 맞닿기엔 너무 멀어보였고 잘 알지 못하는 걸 상상하는 건 무리였기에 쌓아둔 마음을 언젠가로 보내는 게 익숙했다. 낮마다 어리석은 생각들을 책망했다. 힘든 하루의 끝에, 내가 힘이 될 수 없음을 칭얼임을 들어도, 제대로 다독일 수 없음을 너무 느린 걸음에, 곁을 지켜줄 수 없음을 매일마다 울음과 웃음이 한가득 남았다. 힘든 내색을 하지 않으려는 게 눈에 보여서 무슨 일이 있을까, 자주 불러주는 게 들려서 혹시나 울지 않을까, 말을 삼키는 걸 알아서 매순간마다 항상 떠올리게 해주었다. .. 2021. 6. 4.
오늘이었던, 오늘이었을
하나를 셈한다는, 그 아침의 여명에서 나는 바른 마음을 선망함을 알았으며 둘을 세어 보이며, 이 정오의 작열에서 나는 눈이 부셔 디딘 곳을 바라보았고 셋이 되었음에도, 이 저녁의 황혼에서 발자국이 남지 않았음을 그제야 알아 다시 하나를 셈하며, 마지막 밝음에서 옳다는 것의 정의를 눈물로 지워내며 물길이 지난 흔적에서 악취를 맡았다. 그리 한 손을 떨굼에, 이제는 어둑한 길에서 옛, 혹은 오늘이었던 태양의 빛을 떠올리고 지난날에 누운 어린 맹세를 상기해내었다. 그런, 오물을 치우던 손에서 하나를 들어 한 때는 오늘이었을, 내일 아침을 셈했다. 2021. 6. 4.
취하지 않을
기움에도 넘어지지 않을, 혹은 않아야 할 하루를 한 날으로 축약하기에는 길었던 그 느리게 다가온 통증이 평범하기만 한 그 오 일을 지새운다는 것의 끝맺음에 흔들려도 내일을 그리며, 혹은 그저 바란 휴일은 다음 날의 하루보다도 짧게 느낄 이토록 빠른 행복들은 멀게만 보였기에 그 이틀을 떠나보낸 것의 다음 기약을 항상 취기가 오른 걸음으로 지나옴에도, 취하지 않을 나와 너, 우리들의 한 주를 구슬피 달콤히도 들이킴을 2021. 6. 4.
이루기를 이르며
꿈은 떠오르는 상념과 같아 이룸과는 멀어질 뿐 언젠가 바랐다는 것이 바래질 즈음에야 이상이라는 말에 숨은 어리석음을 봤고 지금껏 미뤘다는 것이 믿겨질 즈음에야 두려움 뒤에 피어난 욕심을 알아차렸다. 이룸은 진의가 없는 본심같아 꿈과는 멀어질 뿐 인전에 선명하던 것이 선망된 즈음에야 미화되었던 동기 곁의 질투심을 느꼈고 오늘도 상기했던 것이 상상될 즈음에야 꾸준한 걸음과 겹친 나태함을 떠올렸다. 이뤄냄은 꿈에 젖은 잠같아 이룸과는 멀어질 뿐 종래에도 이루기를 이르며, 남지 않을 미련을 두었다. 2021. 6. 4.
처마 끝
곁에 있고 싶은지, 아니면 곁에 두고 싶은지 죄는 없겠으나 분명 사할 것은 있었다면서 처마 끝, 고인 물에 비친 하늘은 검었었기에 여전히 고개를 떨군 채 앞을 확신하고 있는. 곁에 남고 싶은지, 아니면 곁을 뜨고 싶은지 후회는 있겠으나 분명 이 길이 맞겠다면서 처마 끝, 온기가 맴도는 이곳은 어두웠기에 타오르는 불 역시 세상에 침전할 것이라며 무채색, 삶은 곁에 남아있는 것이 아니기에 처마 끝, 흘러내리는 물줄기는 눈가 끝, 흘러내리는 안도감은 생의 끝, 흘러내리는 다짐마저 여전히 갈망하나 포기하고 있을 뿐이었다. 2021. 5. 24.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