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걸음 (3)
심연, 미약한 광택조차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나지막하게 울리는 심장의 고동이 유난히 크게 들리는, 빈틈없이 밀폐된 공간이다.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가 유난히 시리다. 손을 뻗어 앞을 더듬자, 무언가 뭉개져 피부를 덮어온다. 이 역시, 내 몸을 더욱 차갑게 만들었다. 나는 눈 속에 파묻혀있었다. 그렇지만 살아있는 자의 묘비 위를 덮는 울음 덕에, 무뎌진 일부의 감각이라도 가야할 방향은 알고 있었다. 손과 발을 휘저으니, 체온은 높아지나 주위는 여전히 춥다. 결정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빛 줄기 역시, 서늘함을 이겨내진 못했다. 곧이어, 눈덩이가 쏟아져내렸다. 창백하게 질린 대지, 단 한 줌의 푸름을 쥐지 못한 땅이 내 눈앞을 메웠다. 내리쬐는 햇살은 반사되어 내 눈을 찔러왔으나, 이미 세상은 온통 백..
2021. 3. 20.